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1화

무장 요원들의 경의를 받으며 무표정하게 실험실로 걸어 들어가는 허진웅을 본 강이서는 그의 등을 향해 참지 못하고 외쳤다. “허 교수님, 저는 이번 17번 실험체의 사육사입니다. 제가 무사히 분열 테스트로 실험체를 승급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허진웅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수많은 테스트 연구원을 이끌고 묵묵히 안으로 들어갔다. 소문대로 그 누구도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실험실 문이 강이서의 코앞에서 닫혔다. 문밖 거대한 LED 스크린에는 상승하는 실험 등급이 표시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S 구역의 고급 연구원들인 그들은 이 장면이 신기한 듯 수군거렸다. “A 구역, 실험체 승급 테스트?” “정말 드문 경우야. A 구역 실험체가 진화한 건가?” “들었어? 얼마 전에도 A 구역 실험체 하나가 승급했다던데, 해파리 변이체였다고 하더라.” 흥미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그들의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가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두 실험체의 사육사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첫 번째 분열 실험이 끝났을 때, 문어 인간 실험체는 눈에 띄는 손상을 입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자 연구원들이 공격 난이도를 계속해서 높여 날카로운 레이저 무기로 불규칙한 광선을 쏘아댔다. 문어 인간은 대부분의 공격을 피했지만 간혹 맞아도 상처가 빠르게 재생되었고 찢어진 피부도 순식간에 아물었다. 두 번째 절단 실험에서는 폭발물이 사용되었다. 관측 구역 전체가 강렬한 빛과 연기로 뒤덮였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거의 볼 수 없었다. 모니터 앞에 대기하고 있던 테스트 연구원들은 적외선 이미지를 통해 문어 인간이 빠르게 회피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예상보다 피해가 훨씬 작았다. “대단하군.” 그들은 이런 존재가 A 구역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이때 누군가 말했다. “자체 변이를 한 것 같아요.” “자체 변이? 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고요?” 얼마 전에도 A 구역의 해파리 실험체 하나가 변이를 일으켰었다.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세 번째 테스트 독극물 투입이었다. 문어 인간은 독액을 피하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몇 개의 문어가 오염되어 바로 검게 변하며 썩어들어 갔다. 고등 지능 생물답게 독이 퍼지기 전에 오염된 문어를 스스로 잘라냈다. 하지만 이후부터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고 재생 속도 또한 감소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처음으로 ‘경고’라는 노란색 불이 떴다. “대단한데요? 이 정도까지 버틴 후에야 경고가 뜨다니요.” “정말 강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바로 이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허진웅이 갑자기 말했다. “세 단계 더 올려 봐.” 생물 연구원들은 그의 말에 따라 더 높은 강도의 무기를 투입했고 문어 인간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지만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이번엔 촉수가 많이 잘려나갔다. 생명 수치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게임 캐릭터의 피가 바닥나기 직전인 듯 보였다. 다행히 문어 인간은 아직 살아 있었다. 연구원들이 치료제를 준비하고 테스트 연구원들이 실험을 마무리하려 할 때 허진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올려.” 이번엔 연구원들이 주저했다. “더 이상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허진웅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명령했다. “괜찮아. 세 단계 더 올려.” 연구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폭력적인 파괴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공격에서 실험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이것은 실험체들이 죽음 앞에서 절대적인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상위자들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들은 실험체들이 유전자 속 깊이 숨겨진 변이 가능성을 죽기 직전까지 폭발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몰아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끊임없는 폭격과 분열, 독액 분사, 레이저 절단을 견딘 문어 인간은 고통이 극에 달했다. 허진웅은 남은 한 손을 컨트롤 패널에 올려두고 한마디 했다. “비켜.” 그러더니 직접 조작하여 폭격 강도를 최고치로 조정했고 독극물을 대량 투입했다. 순간 관측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고급 교수는 최고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실험체의 죽음을 감수하면서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사람이었다. 레이저, 독극물, 폭발의 연속적인 공격으로 실험 구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잠시 후 연구원이 보고했다. “교수님, 더 이상 움직임이 없습니다.” 스크린 앞에 있는 연구원이 말했다. “생명 징후가 계속 하락 중입니다.” 허진웅은 모니터를 노려보며 몇 분을 더 기다렸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잔해 속에서 더 이상 생명체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외선 감지 결과, 생체 신호 소멸. 실험체는 가사 상태에 진입했습니다.” 가사 상태는 변이 생물체가 죽기 직전에 보이는 마지막 생존 본능이었다. 이 시점에서 즉시 치료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지만 내버려 두면 영원히 죽을 것이었다.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던 허진웅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린 뒤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이 행동은 ‘예상외의 흥미로운 결과’ 를 마주했을 때 나오는 허진웅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움 속에 약간의 실망도 묻어 있었다. 비슷한 공격 실험은 이전에도 했었다. 만약 같은 수준의 생물이 필요하다면 유전자를 복제하여 클론을 만들면 된다. 이런 생물들은 유지하는 데 엄청난 자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실험체를 키울 필요는 없었다. 그때 문틈 너머에서 한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게 해 주세요! 내가...”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허진웅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문밖에 있는 젊은 사육사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릴 수 있어요. 제발 믿어 주세요!” 아름다운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어 있는 젊은 여자는 몹시 초조해하며 애타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누가 보더라도 감정이 있는 사육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장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법했지만 거대하고도 냉혹한 실험 기지에서 감정은 가장 불필요한 짐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감정이 없는 무기였고 쓸데없는 감정은 짐이 되며 약점이 될 뿐이었다. 허진웅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그녀의 얼굴에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옆에 있던 조수가 갑자기 다가와 스크린에 여러 가지 데이터를 띄우자 허진웅은 시선을 내려 데이터 화면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얼마 전 S급으로 승급된 해파리 변이체의 테스트 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빼곡하게 적힌 숫자들과 죽음에 이르는 집행 과정이 담긴 것을 유심히 보던 그는 문득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여보내.”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