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김소월은 심장이 쫄깃해지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허리를 굽힌 자세로 감히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빠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완곡하게 거절해야 할까, 아니면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화를 내며 질책해야 할까?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이보현의 손은 이미 그녀의 가슴앞에 내려앉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옷깃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주었다: "여기 머리카락 있네, 파스타에 떨어트리지 마."
김소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제서야 긴장감이 풀린 것 같았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요즘 탈모증상이 좀 심한가 봐요."
"괜찮아." 이보현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토마토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김소월은 뻣뻣한 상태로 얼어붙은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서있었다.
두 입 먹은 후 이보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맛 괜찮은데 저녁은 먹은 거야?"
"아니요, 아직 안 먹었어요." 김소월이 말했다.
"가서 네것도 만들어 와, 요리실력 괜찮은데." 이보현은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김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보현은 김소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김소월은 자신의 파스타도 한 그릇 만들었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설거지를 마친 후 김소월은 이보현의 곁에 앉았다, 잠옷 사이로 드러낸 그녀의 하얀 속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보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태성그룹 일은 어떻게 되고있어?"
"오늘 오후에 계약 체결했습니다."
일 얘기가 나오자 김소월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능숙하게 얘기했다.
"1조는 이미 이체한 상태입니다, 태성그룹 이사회에 저희 사람들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지분도 저희가 더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면 저희가 태성그룹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이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했어."
"태성그룹 이사회에 들인 임원들에게 자금 감시의 명목으로 태성그룹의 계좌, 세금 납부 상태 확인하여 증거 확보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태성그룹의 현재 재무상태로 봤을 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김소월이 말했다.
이보현은 뜻밖의 표정으로 김소월은 바라보았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뜻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집행 능력도 뛰어났다, 정말 보기 드문 인재였다.
이 순간 소파에 앉아있는 김소월의 모습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방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보현은 잠시 생각하다 천천히 물었다: "태성그룹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투자를 하려고 한 거지?"
"회장님, 어느 회사든지 이런 문제는 다 조금씩 있기 마련입니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김소월은 당당하고 차분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케이프 재단의 능력으로 태성그룹 위기를 헤쳐나가고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엔 충분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문제에 대해서도 저희 쪽 개입으로 인해 해결할 수 있구요. 다만 회장님의 요구에 따라 원래 계획은 이미 변경한 상태입니다."
이보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소월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일 아침 8시 전까지 차 한 대 구해줘." 이보현은 화제를 돌렸다, 김소월이 충분히 잘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틈 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곧바로 물었다: "어떤 차로 구해드릴까요?"
"다른 사람한테 내 신분 알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평범한 차로 보내주면 돼, 그리고 앞으로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보현이 말했다.
김소월은 약간 당황한 듯 이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부를까요?"
"보현이라고 부르던지 아니면 선생이라고 불러도 되고, 다 괜찮으니까 어쨌든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마."
김소월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보현이라고 부르라니 이 바닥에서 살고싶지 않고서야 어떻게 직접 이름을 부르겠는가.
한참을 생각한 후 김소월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아무도 없을 때는 회장님이라 부르고 사람이 있을 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래." 이보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난 어디서 자야 되지?"
이 말을 들은 김소월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1층은 다 객실입니다, 2층 환경이 더 좋긴 합니다, 저는 2층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보현은 웃으며 말했다: "솔로남녀끼리 한 공간에 있는 것도 그런데 난 그냥 객실에서 지낼게."
김소월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가 객실로 모시겠습니다."
이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소월을 따라 많은 객실 중 하나의 객실로 들어갔다.
방안을 흘끗 본 뒤 이보현은 김소월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쉬러 가, 앞으로는 내 일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 할 거 하면 돼."
"알겠습니다, 회장님. 좋은 밤 되세요." 김소월은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보현은 백 평이 넘는 넓은 거실에서 돌아다니다 소파에 앉아 명상하기 시작했다.
……
아침 7시, 이보현은 정각에 눈을 떴다, 밤새 명상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고 몸이 거뜬했다.
다 씻고 거실로 나와보니 김소월은 이미 한참 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김소월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보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럴 필요 없어, 괜히 어색하잖아."
김소월은 끄떡하지 않고 차 키를 꺼내며 이보현에게 건넸다: "회장님, 말씀하신 차는 밖에 세워져 있습니다."
"폭스바겐이구나, 괜찮네." 이보현은 차키를 건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월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폭스바겐 페이톤입니다."
"페이톤?" 이보현은 깜짝 놀랐다: "이 차 1억 넘는 거 아니야?"
"최고급사양 페이톤으로 가격은 2억원 대입니다." 김소월이 대답했다.
이보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신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평범한 차로 구해달라고 했잖아?"
김소월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회장님께서 자신의 신분에 대해 그리고 케이프 재단의 실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물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 감히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회장님, 이미 회사에서 구한 가장 저렴한 차입니다."
"알겠어." 이보현은 깊은 한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나 신경쓰지 말고 가서 볼일 봐."
김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김소월은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타이트한 정장을 입은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의 섹시한 몸매를 드러냈고 힐을 신은 그녀는 더더욱 늘씬해 보였으며 걸어가는 뒷태는 성숙한 여성미를 물씬 풍겼다. 몸매든 풍기는 아우라든 나무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보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리고 운전해 도심으로 향했다.
아침 8시, 이보현은 정각에 법원 앞에 도착했고 마침 류이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법원에 오긴 한 거예요? 거북이처럼 도망치지 말고 약속 지키세요." 전화 건너편에서 류이서의 무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현은 차를 세운 후 차분하게 얘기했다: "이미 법원 앞이야."
전화를 끊은 후 차에서 내려 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윤재호와 류이서를 보았다.
약속대로 도착한 이보현을 보고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현은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자."
류이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자녀도 없고, 분할할 재산도 없으니 두 사람의 이혼절차는 아주 간단했고 빠르게 끝났다.
30분 후, 두 사람은 이혼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
대문 앞에서 류이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혼증명서를 들고 윤재호에게 말했다: "재호 씨, 저 드디어 자유에요."
윤재호는 류이서를 품에 안고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그 장면을 본 이보현은 속이 울렁거렸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자유 되찾았으니 둘이 혼인신고 하면 되겠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류이서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이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재호 씨랑 성대한 결혼식 올릴 거예요. 성남시의 모든 유명인사들을 초대하여 식 올리고 혼인신고 할 거니까 당신은 가던 길이나 가세요."
"그래? 그때가서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길 바랄게." 이보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화가 치밀어오른 윤재호는 이보현의 앞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 자식이 죽고싶어서 환장했나?"
동시에 윤재호의 경호원 두 명도 달려들어 이보현을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