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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녀를 건드리지 마

성강희는 분명히 차를 몰고 왔음에도 소은정에게 저를 태워다 주길 요구해왔다. 소은정은 이를 골치 아프다는 듯, 어쩔 수 없이 동의하였다. 차에 올라탄 뒤 출발하려던 찰나, 맞은편에서 길다란 그림자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성강희는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박수혁은 어쩜 그림자도 음침하지?” 그는 길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 곧장 차 앞으로 다가서왔다. 분명 할 말이 있는 듯하였다. 곧 차창을 두드려오는 박수혁에 소은정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채 창문을 내려 보였다. “대표님, 무슨 일로?” 박수혁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말한 두가지 조건…….” 소은정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의 말을 가로 채었다. “드디어 대표님이 선택을 하셨나 보네. 그래서, 뭘 고르셨어요?” 박수혁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조건을 바꿔야겠어. 서민영은 건드리지 마.” 그의 말을 들은 소은정의 웃음이 한 순간에 멎어 들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도대체 얼마나 그녀를 아끼는 것인가…. 박수혁에게 중요한 존재란 서민영뿐인 것일까? 분명 머리 속으로는 신경쓰이지 않았으나 어딘가 익숙한 아픔이 쿡쿡 찔러오는 듯하였다. 소은정은 이 익숙한 아픔을 오랜 시간동안 견뎌왔었다. 박수혁이 상처 준 것은 결국 자기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쓰렸다. 그 때 따뜻한 손이 소은정의 오른손을 꽉 쥐여왔다. 한참을 멍하던 소은정은 그제서야 정신을 퍼뜩 차렸고, 옆을 돌아보니 손을 잡아온 성강희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민영 밖에 눈에 들지 않으시나 봐요. 제가 당신이었으면 스스로 눈을 찔렀을겁니다.” 박수혁에게 쏘아붙이는 성강희 덕에 소은정은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시금 덤덤한 눈빛을 한 채 실소하며 말했다. “주도권은 저한테 있다는 걸 자꾸 잊으시는데…. 무조건 내가 제안한 두가지 중에서 선택하세요.” 소은정은 표정을 싹 굳히더니 곧 차창을 올려 닫았고, 지체없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나아갔다. 차는 순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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