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5화 약을 타다
박시준은 두 손을 꼭 쥔 채, 자리에 멍하니 서서 왠지 억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박수혁은 그런 아이를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말하기 싫은 거 보면 내가 윤이영 저 여자를 오해한 걸 수도 있겠네? 저 사람이 계속 너를 돌보게 하고 싶어?”
아무리 물어도 박시준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서있었다. 결국 짜증이 난 박수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과 닮은 눈앞의 이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에게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 계속 말을 하지 않을 거면 나도 방법이 없어. 너와 가사도우미 사이의 일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박수혁의 말에 드디어 박시준이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지만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눈빛이었으며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눈빛은 찾아볼 수가 없이 한순간에 훅 커버린 것만 같았다.
박시준은 창백한 얼굴로 입술만 계속 깨물었다.
이때,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회의에 참석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고 박수혁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한참 뒤, 비서가 사무실에 들어와 박시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련님, 대표님이 어디 가고 싶은지 물으셨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비서도 박수혁이 왜 자신의 친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차가운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너무도 닮은 두 사람을 보면 친자가 아닐 확률은 아예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박시준은 메모지와 펜을 꺼내 뭔가 끄적거렸고 메모를 확인한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40분 뒤, 회의를 마친 박수혁은 나오자마자 박시준의 동향부터 물었다.
“도련님은 여전히 원래 있던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셔서 모셔드리고 왔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녁 시간이 되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자를 확인한 박수혁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둠이 깃든 저녁, 박수혁은 굳은 얼굴로 눈앞에 우뚝 서있는 아파트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차에서 내려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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