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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무덤덤하게 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오늘 변서준과 모지영이 이 장소에 나타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변서준이 별장에서 그녀에게 사과를 강요한 그때부터, 정가현의 마음은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렸다. 지금의 변서준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남편일 뿐이다. 그녀는 우아한 미소로 유한진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가현과 유한진이 다가오자 모지영은 너무 놀라 변서준에게로 머리를 돌렸는데 변서준 역시 깜짝 놀란 듯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낮에 있은 일로 변서준은 정가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혼한 지 고작 몇 시간이라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거지? 오늘 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몽환적으로 아름다웠다. 결혼한 지 3년 동안 변서준은 정가현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유한진은 그녀의 새로운 남자인 걸까? 오전에 이혼한 여자가 오후에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니, 정말 빠르다. 변서준은 왠지 마음이 이상하고 화가 솟구쳤다. 그는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반드시 합리적인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의 앞까지 다가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가볍게 그를 무시했다. 너무 굴욕적이다. 보아하니 유한진도 변서준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변서준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모지영도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불편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정가현이 다가와 손을 내밀면 몇 마디 도발적인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예 말할 기회조차 없이 무시당하다니. 미리 도착해 홀에서 샴페인을 맛보던 변서준의 동생 변서아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제야 밖으로 나와보았다. 모지영을 발견한 변서아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비비며 입을 열었다. “언니, 저년은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모지영은 문뜩 눈빛이 밝아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아야, 너 아직 모르지? 두 사람 오늘 오전에 이혼했는데 이게 고작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벌써 새 남자를 찾았네? 축하해줘야지, 뭐.” 그 말에 변서아는 안색이 시커멓게 가라앉았다. “축하는 개뿔.” 그녀는 유한진과 함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정가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전에 이혼했는데 저녁에 다른 남자와 함께 이런 장소에 왔다는 거지? 이건 뭐 로켓보다 더 빠른 거 아냐? 천한 년이 보나마나 이혼 전에 바람난 게 틀림없어. 감히 우리 오빠를 두고 외도를? 제대로 혼내줘야겠네.” 변서아는 불만 붙여도 바로 터지는 성격이라 이내 씩씩거리며 정가현을 향해 돌격했다. 모지영은 괜히 말리는 척하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저기요!” 변서아가 큰 소리로 외치자 유한진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 남자 뭐지? 어쩜 오빠인 변서준에 버금가는 미모를 지녔을까? 순간 그녀는 정가현에 대한 질투가 최고조에 달했다. “누구시죠?” 유한진이 변서아를 차갑게 흘겨보며 묻자 정가현은 곧장 유한진의 귓가에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시누인데 변씨 가문에서 제일 싸가지없는 인물이야.” 그 말에 유한진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비록 귓가에 대고 말한 건 맞지만 변서아는 그 말을 똑똑히 다 들을 수 있었고 두 사람의 다정한 행동은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하지만 잘생긴 남자 앞에서 추태를 부리기 싫어 그녀는 애써 흉악함을 줄이고 좋은 말로 타이르는 척했지만 목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저기요, 이 여자한테 속지 마세요. 이 여자 한 번 다녀왔다고요. 게다가 재벌 집 딸도 아니고 시설 출신의 사기꾼이에요. 잔꾀가 얼마나 많은 여잔데. 예전에 글쎄 우리 할아버지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 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명쾌하게 들려왔다. 전체 파티홀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변서아는 얼굴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가현을 노려보았다. “너 지금 감히 나 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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