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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변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까지 약을 먹이더니 이건 또 뭐하자는 수작이지? “너 머리가 어떻게 됐어?” 정가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는데 확연한 키 차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할아버지가 억지로 결혼시켰고,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렇다면 모지영이랑 결혼해. 모지영한테 명분주고 싶지 않아?” 변서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여자를 힐끗 보았다. 정말 변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양보하겠다고? 그녀의 진지한 눈빛에 변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후회하지 마.” 정가현은 차갑게 웃었다. 이 순간 그녀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확고했다. “내가 후회하는게 딱 하나 있어. 바로 당신과 결혼한 거야.” 말을 끝낸 그녀는 바로 뒤돌아서 쿨하게 방을 나가버렸다. 변서준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예전의 그녀는 늘 부드럽고 나약하고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확고하고 강경하다. 설마 내가 오해한 걸까? 하지만 나한테 약을 탈 사람은 이 여자밖에 없는데...... ...... 한참 뒤, 두 사람은 각자 가정 법원으로 향했다. 후줄하고 낡아빠진 싸구려 옷을 입은 그녀는 프라다 한정판 정장을 입은 남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불협화음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지만 정가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단지 빨리 이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드디어 두 사람은 이 무거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혼증명서류를 보며 정가현은 허탈감이 들었다. “잘 지내라.”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남자는 이미 사라졌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마치 한 번도 그녀의 인생에 나타난 적 없었던 사람처럼. “오히려 잘 됐지 뭐.” 정가현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매정한 그 남자와 남이 되어 버렸다. 이때 갑자기 한정판 벤틀리 밴이 그녀 앞에 멈춰섰다. 차문이 열리자 머리가 반백인 중년 남자가 네 명의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상대를 확인한 정가현은 턱을 약간 치켜들었는데 왠지 모를 타고난 고귀함이 물씬 묻어났다. “소문이 벌써 아빠한테까지 갔어요? 어쩜 이혼하자마자 찾아오셨네요.” 임 집사는 활짝 웃으며 정가현에게 허리굽혀 인사하고 말했다. “아가씨, 회장님과 약속한 3년의 기한이 끝났습니다.” 임 집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정가현의 손에 들린 이혼서류를 힐끔 보며 아쉽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보아하니 결국 변서준의 마음을 얻지 못했네요. 그렇다면 약속대로 성안시에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으세요.” 정가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침묵했다. 열다섯 살 되던 해, 그녀는 누군가의 악행으로 기억을 잃은 채 부성시 보육원에 던져졌다. 그러다 우연히 변씨 가문 어르신의 생명을 구해주어 변씨 가문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고 변서준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다 두 사람의 신혼 첫날 밤, 예상치 못한 사건의 발생으로 그녀는 기억을 되찾았지만 변서준에게 이미 마음을 빼았긴 뒤라 사랑을 위해 임 집사와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아버지와 3년의 약속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3년이나 정성을 쏟아부었으니, 정말 개같은 결정이었다. “회장님이 많이 그리워하세요. 아가씨, 이젠 저와 함께 돌아가시죠. 더는 회장님 속 태우지 마시고요. 회장님이......” “아저씨.” 지나간 일을 언급하자 정가현은 안색이 싸늘해지더니 임 집사의 말을 끊어버렸다. “여자가 있었어요. 유씨 가문은 나같은 한가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잖아요. 전 부성시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그러니 돌아가지 않아요.” 정가현은 2년 동안 그녀를 해쳤던 가해자에 대해 조용히 알아보았는데 상대는 유씨 가문의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확실하게 누군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어둠 속에 있는 적을 가까이 한다면 그녀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굳이 돌아가서 그 여자와 기싸움을 하기 싫었다. 임 집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회장님 생각이 맞았네요. 아가씨는 아직도 회장님을 많이 원망하고 계시죠?” 그는 주머니에서 블랙골드 카드 한 장을 꺼내 공손히 넘겨주었다. “이건 아가씨 카드예요. 6조, 그대로 들어있죠.” 그러더니 경호원을 향해 손짓하자 경호원은 다급히 새로운 계약서를 들고 달려와 정가현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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