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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화

“저… 저기, 날 다치게 하지 않겠다며? 또 약속을 어기는 거야?” 여름이 다급히 말했다. “이거 봐. 당신은 내게 한 약속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어.” 분노에 이글거리던 하준이 갑자기 멈칫했다. 뭔가가 정곡을 확 찌른 듯했다. 여름이 비웃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난… 약속을 지키겠어.” 잠시 후 똑바로 앉았다. 마음은 고통스럽고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자기야, 날 너무 자극하지는 말아줘. 나에게는 당신뿐이야. 지안이랑 사귄 적이 있어도 난 평생 당신 말도 다른 사람에게 손대 본 적은 없어.” 여름은 흠칫했지만 곧 비난했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당신이 백지안이랑 사귄 세월이 십수 년인데, 요 3년은 손대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 오랜 세월을 사귀면서 아무 일이 없었다니 믿을 수 없어.” “그때는 우리 둘 다 어렸잖아. 나중에는 내가 회사를 맡게 되면서 너무나 바빠서 그런 일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 그러다가 지안이가 외국으로 나가 실종되었고. 난 평생 당신 하나뿐이었어.” 말하다 보니 자기 스스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안을 대할 때면 여름의 대할 때처럼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 점점 명확해졌다. 내내 그렇게 죽도록 백지안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백지안이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때의 유일한 빛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백지안은 언제나 착하고 아름답다고 굳게 믿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름을 만나고 나서 하준은 무엇이 사랑인지를 느꼈다. 여름과 함께 있을 때는 편안하고 달콤하고 즐거웠다. 안 보면 너무나 보고 싶고 여름이 해준 밥을 먹을 때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었다. 여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무조건 다 좋았다. “옷은 여기 둘게. 입으면 내려와. 아침 해줄게.” 그러더니 하준은 돌아서서 나갔다. 한동안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여름은 느릿느릿 기어 나와 샤워를 하러 갔다. 뜨거운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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