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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화

“일단 좀 쉬셔야죠.” 상혁이 의견을 냈다. “신제품 개발이 곧 성공할 텐데 그러면 국내외에서 모두 FTT에 주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FTT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겁니다.” 하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FTT는 점점 더 성장하겠지. 지금까지 번 돈만 해도 얼마인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 뭐 해? 그 돈을 쓰고 싶은 상대는 날 미워서 죽으려고 하는데.’ 이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백지안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 변명 톡도 줄줄이 도착했다. 하준은 열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저녁이 되니 양석훈이 전화를 걸어왔다. “백지안 님께서 욕조에서 동맥을 그었습니다.” 하준은 등을 세웠다. 목소리가 긴장되었다. “어떻게 됐어?” “다행히 저희 쪽 인원이 빨리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취했습니다. 지금 구급차 안입니다. 백윤택에게는 이미 연락했습니다만...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하준이 말투는 담담했다. “나도 이제 막 수술이 끝나서 못 가.” “아… 예….” 양석훈은 좀 뜻밖이었다. 하준이 당장 달려올 줄 알았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어떤 중요한 일이 있든 해외 출장 중이든 백지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당장 달려왔을 터였다. 양석훈은 구급차 안에 누워 창백해진 백지안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전에는 자기도 백지안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꾸 이러니 이제는 감정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이게 처음도 아니잖아? 최근 입원도 너무 자주 했지. 이제는 뭐 병원이 거의 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병실에서 하준은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주혁은 6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쉬고 있다가 하준의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걔는 이제 뭐 중독이냐? 아예 그냥 병실 하나를 전세 내 줘야겠구먼.” “툭하면 자기 몸을 희생해서 관심을 받으려고 하네.” 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백지안과 관련된 많은 일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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