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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화

그러나 같은 블랙 수트라도 하준이 입고 붉은 카펫 위에 서 있으니 더없이 기품 있어 보여 시선을 떼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준이 고개를 들어 그윽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여름은 흠칫했다. 이때 옆집 남자아이가 문을 열고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오다가 갑자기 여름을 보더니 눈을 찡긋거리고 웃었다. “누나, 이제 와요? 남자친구가 여기서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아까 나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부터 저기 서 있더라고요.” “남친 아닌데.” 여름이 민망한 듯 말했다. “에이~ 뭘 부끄러워 하세요? 지난 번에 뽀뽀하는 것도 다 봤는데~” 남자아이는 헤헤거리더니 곧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문 밖으로 그 집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소리가 다 흘러나왔다. “이 녀석아! 쓰레기 버리고 오랬더니 뭔 실없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실없는 소리 아닌데? 어제 아침에 학교 갈 때도 그 형이랑 같이 엘리베이터 탔단 말이에요. 엄마랑 이모들이랑 만날 그래잖아. 결혼도 안 하면서 연애하면 나쁜 놈이라고.” 하준은 민망함에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지경이었다. 여름은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열쇠를 들고 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왜 또 왔어?” 하준의 입술이 달싹이더니 저도 모르게 생각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왜? 반갑지도 않은가 봐?” 말을 하고 나니 짜증이 또 밀려왔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여름은 하준을 한 번 흘겨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아주 여기 올 때마다 날 안을 수 있는 줄 아나 본데, 미안. 오늘은 피곤해서 못 놀아주겠어.” “오늘은 그런 거 아니야.” 하준은 여름의 말에 화가 났다. “됐어, 괜히 사람 쓰레기 만들지 말라고” “만들다니? 원래부터 쓰레기거든!” 여름이 씩씩거리며 노려보았다. 통통한 볼이 부어 오른 모습을 보니 화가 났는데도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하준은 다시 심장이 간질거렸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았다. “그제는 당신도 알다시피 나도 피치 못해 왔었지만 어제는… 어제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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