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우리 얘기 좀 해요.”
여름의 까만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하준을 바라보았다. 하준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무심히 찔러 넣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낯선 사람 대하듯 여름에게 눈길을 돌렸다.
수행하던 보디가드는 여름을 처음 봤다. 하준의 관심을 끌려는 스토커라고 생각한 보디가드는 여름을 무참히 쓰러뜨렸다.
하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긴 다리를 들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여름은 아픔을 참고 다시 그를 쫓았다.
“전에 제안했던 것 말이에요. 할게요, 내가. 다만 양 대표와 회사는 그냥 놔두는 조건으로요.”
하준이 우뚝 멈췄다. 마침내 돌아보았다. 입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한 냉소가 걸려있었다.
“내가 제안한 사항이 있었습니까? 전혀 모르겠는데?”
여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하준에게 잠자리를 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차마 그런 말은 꺼낼 수는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날 밤 하준은 제안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여름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다고 했었다.
여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눈을 아래로 살며시 내리 깔면서 살짝 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일전에는 내가 상황 파악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요…?”
하준이 돌아서서 몇 계단을 내려오더니 여름 앞에 멈춰 섰다. 한껏 조롱하는 눈빛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몇 마디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당신이랑 잠자리를 가질 것 같습니까?”
정제되지 않은 적나라한 표현에 여름은 난감한 나머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너무 창피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울락말락 하니까 예쁜데? 마음에 들어.”
하준이 가볍게 여름의 턱을 쓸었다.
“좋아. 기회를 주지. 따라와요.”
그러더니 휙 돌아서서 들어갔다.
뭘 하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게 양유진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여름은 하준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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