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김찬혁의 차는 회색의 인피니티였는데 겉보기에도 매우 검소했다. 마치 김찬혁이 그에게 준 느낌처럼 부드럽고 평화로웠다. 이는 최서진과 정반대이다. 그 냉혹한 남자는 항상 40억이 넘는 고가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타고 다녔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왜 갑자기 최서진이 생각났지?’ 온세라는 고민스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가 막 최씨 집 대문을 떠났을 때 소시연은 오미숙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큰 사모님, 방금 저 차가 찬혁 도련님의 차죠?” 소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오미숙은 말을 멈추었다. “방금 봤는데... 작은 사모님이 차 안에 있었어요.” 소시연의 얼굴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오미숙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작은 사모님께서 조수석에 앉으셨고, 도련님이 같이 웃으며 이야기하셨어요.” 소시연은 잠자코 대문 밖을 내다보았고, 눈빛은 어두웠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잘 조사해봐.” 온세라는 병원에 도착한 후 함께 외할머니 병실로 갔다. 온세라는 문 앞에서 외할머니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유리문을 통해 간호사가 외할머니한테 농담하는 것을 보았다. 외할머니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면서 그녀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문을 열자 외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눈빛이 반짝였다. “세라야!’ 외할머니가 격동하며 일어서려 하자 온세라는 얼른 달려가서 할머니를 부축하고는 머리를 저었다. [몸이 아직 완쾌하지 않았으니 서지 말고 많이 쉬어야 해요.] 외할머니는 다시 병상에 누웠다. “내 몸은 건강해, 온몸에 힘이 가득 찼어!” 온세라는 상냥하게 웃으며 사과를 깎았다. 이쁘게 접시에 담은 후 작은 포크를 가지고 할머니께 드렸다. 외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눈가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녀는 이렇게 철이 든 손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착한 손녀, 할머니가 폐를 끼쳤어.” 온세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 [우리는 가족이니 폐를 끼친다고 말하면 안 돼요. 할머니는 건강을 잘 챙기시고 빨리 나아지셔야 해요. 저 나중에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갈 거예요. 성주에 가서 설산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외할머니는 눈물을 머금은 채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할머니는 반드시 빨리 회복될 거야.” 이 따스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보며 김찬혁도 감동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김찬혁은 비록 어머니가 충분한 사랑을 주고 물질적으로도 충족했으나 온세라와 외할머니의 감정은 여전히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온화하게 말했다. “세라 씨, 방금 간호사에게 물어봤는데 어르신은 무사하다고 했어요. 제가 먼저 어르신의 재검사 자료를 준비할 테니 잠시 후 어르신을 데리고 진료실로 오세요.” 온세라는 그제야 김찬혁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고 다른 사람을 무시한 것 같아서 매우 미안해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할머니께서 깨어나셨어요.] 김찬혁은 그녀의 이런 복잡한 수화를 알아볼 수 없었기에 외할머니가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아닙니다, 당연한걸요.” 김찬혁이 떠난 후 외할머니는 눈짓하며 온세라를 놀려주었다. “우리 세라, 저 잘생긴 녀석이 네 남자친구야? 할머니가 혼수상태에 오랫동안 있어서 말하지 않은 거니?” 온세라는 외할머니가 그녀와 김찬혁을 오해할 줄은 몰랐다.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에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이미 시집간 일을 말해주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 [할머니 아니에요, 저 분은 우리를 도와준 의사예요. 좋은 분이고요.] 외할머니는 비록 조금 실망했지만 이내 속상한 마음을 풀었다. ‘우리 손녀가 이렇게 이쁘니 조만간에 세라를 아껴주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될 것이야.’ 온세라는 오후 내내 외할머니를 동반하고서야 병실을 떠났다. 그녀는 외할머니께서 다음 수술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물어보려고 원장을 찾았다. 뜻밖에도 원장은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세라 씨,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누군가 대신 돈을 냈어요. 어르신의 수술은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되었고 따로 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