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폭탄 머리를 한 지예은이 가장 강했다.
하지만 그녀의 군단이 전멸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저항할 힘도 없이 강원우에게 무자비하게 쫓기고 얻어맞으며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난 인정 못 해! 네가 교묘한 수단을 써서 운 좋게 이겼을 뿐이야.”
오만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오미나가 화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원우가 속임수를 썼다고 생각했다.
지예은 역시 분노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녀는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했다.
반만 한울 피시방 쪽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강원우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인정 못 해? 그럼 다시 해 보자.”
지예은과 그녀의 팀원들은 헤드셋을 다시 착용하고 한 판 더 도전했다.
이번에는 강원우가 교활한 전략을 쓴다는 걸 알았기에 그들은 한층 신중하게 플레이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강원우는 애초부터 그들이 자신을 철저히 경계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또 다른 전략으로 응수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략의 향연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계략 앞에서 적들은 우왕좌왕하며 완전히 휘둘렸고 급기야 서로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완패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강원우가 교묘한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길 수 없었던 건 바로 지능의 압도적 차이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이나 반응 속도는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지만 타고난 두뇌 싸움은 답이 없었다.
그때 적 팀의 리더 격인 남학생이 나섰다.
“한 판 더. 이번엔 우리도 멤버를 교체한다.”
그리고 강원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선언했다.
“이번에도 네가 이기면 오늘부터 널 형이라 부르겠다. 네가 시키는 건 뭐든 토 달지 않고 할게.”
그 말을 듣자 옆에서 구경하던 뚱뚱한 친구가 놀라며 외쳤다.
“조규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지예은과 오미나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두 사람은 조규현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면 형으로 인정하겠다는 건 물질적인 피해는 없지만 체면을 완전히 구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방금 두 판 연속으로 처참하게 패배한 터라 그는 분노는 불타고 있었다.
강원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우리, 지현, 너희 둘이 해봐.”
교체된 두 사람은 뚱뚱한 친구와 오미나의 자리를 대신했다.
두 사람은 확실히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듯했고 전술도 즉각적으로 변화했다.
이번에는 강원우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그의 측면을 맡은 배진호와 두 명을 먼저 제거했다.
새로운 적들은 확실히 수준급이었다. 배진호 일행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강원우, 이 미친놈아. 빨리 구해줘. 우릴 완전히 박살 내려고 하잖아.”
배진호가 울부짖었다.
“내 본진이 불타고 있어! 도와줘.”
“윽. 내 본진은 대체 어디 갔지? 언제 포격에 다 날아간 거야!”
하지만 강원우 앞에서는 여전히 무용지물이었다.
적들이 강원우를 포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강원우는 조용히 키워온 5레벨 병력을 투입해 적들을 역으로 압살했다.
그제야 적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았다.
“미쳤네...”
강원우의 플레이에 감탄한 배진호는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
그러나 강원우의 진정한 공포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는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지 않고 극한의 속도로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강원우의 목표는 병력을 최고 등급까지 올리고 핵무기를 개발한 뒤 세계를 평화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의 목적을 깨달은 적들은 필사적으로 방해하려 했지만 몇 차례 연합군을 조직해도 강원우의 병력 앞에서는 무참히 박살 났다.
전략도 뒤처지고 이길 수도 없고 성장 속도까지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패배를 직감했지만 강원우는 그들을 단숨에 끝내지 않고 서서히 농락하며 압박했다.
이러한 강원우의 행동은 조규현과 지예은에게 고문과도 다름없었다.
마침내 적들이 8레벨 병력을 갖췄을 때 강원우는 12레벨 최고 등급 병력을 완성했다.
하늘에는 거대한 항공모함, 바다에는 초대형 잠수함, 땅에는 철의 요새와 세계의 기적들이 우뚝 섰다.
그 순간 압도적인 병력이 출격하여 적진을 태풍처럼 휩쓸며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섬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사한 핵폭탄의 위력은 지도 전체를 불태울 정도였다.
킹 오브 레전드라 명명된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 컴퓨터 그래픽 카드가 타들어 갈 것 같은 압도적인 장면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정말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강원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X발, 정말 사람 맞아?’
“말... 말도 안 돼. 우리가 이렇게 질 리가 없어.”
새로 교체된 두 사람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강원우 일행은 모르지만 지현은 손에 꼽히는 천전 프로게이머였다.
조규현이 도움을 청해 온 것이지만 그는 강원우에게 처참한 패배를 맞이할 것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다.
강원우의 실력은 바로 프로게이머로 전직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강원우는 고개를 돌려 조규현을 바라보며 그가 형이라 부르길 기다렸다.
조규현의 일행도 그를 바라보았고 오미나가 이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강원우의 압도적인 플레이를 떠올리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혀... 형.”
조규현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억울함과 수치스러움이 떠올라 있었다.
“잘 기억해. 오늘 어디를 가든 넌 나를 형이라 불러야 해. 알았어?”
조규현은 치욕과 분노에 이를 갈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강원우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당구장으로 향했다.
“강원우, 너 진짜 대박이다. 완전 존경해.”
배진호와 고경표가 따라가며 감탄했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일행은 당구장에서 몸을 풀려고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미남미녀들이 들어왔다.
“어? 허지민이잖아.”
허지민은 일행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존재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이들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훤칠한 기럭지를 자랑했고 여자들은 뽀얀 피부를 자랑하며 시선을 끌었다.
몇몇은 기타나 바이올린을 메고 있었는데 음악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지민아, 너도 놀러 왔어?”
고경표가 멀리서 허지민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허지민과 아는 사이라는 사실은 어깨를 으씩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쪽은 내 선배들이야. 마침 강진에 와서 내가 안내하고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강원우와 배진호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하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비록 죽마고우이긴 했지만 강원우의 고백을 거절한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지민아, 네 친구야?”
그때 한 잘생긴 남자가 물었다.
“음... 다 고등학교 친구예요.”
허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이 친구는 강원우인데 노래도 꽤 잘해요.”
“그래?”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강원우를 힐끗 보며 가볍게 냉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