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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막 그를 부르려던 찰나 육진우의 눈빛에 제지를 당한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 호칭을 바꾸어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육진우 씨, 육진우 씨가 저희 가게에 와주셔서 얼마나 영광인지 몰라요. 필요한 거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 주세요.” 다들 사장이 육진우한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이 무슨 배후를 가지고 있길래 사장이 이토록 깍듯이 대하는 걸까? 육진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방금 그 직원을 노려보며 딱딱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아내를 데리고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왔는데 절 소란을 피우는 고객 취급을 하고 있더라고요. 왜요? 당신 가게 세력이 언제 이토록 대단해진 거죠?” 육진우의 말을 듣고 나자 그 사장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뱆히고 있었다. 그들의 웨딩숍이 고급 브랜드이긴 하지만 육신 그룹의 그저 자그마한 브랜드에 속하는 거라 육진우 앞에서 감히 건방지게 무례를 범한 것이다. “넌 오늘부로 해고요. 재무부에 가서 이번 달 월급 받고 떠나.” 직원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임시월은 더는 봐주기 힘들었다. 육진우는 술집에서 일하는 모델일 뿐인데 뭐 때문에 저리 호들갑을 떠는 거야? “혹시 상황을 잘못 이해하신 거 아니에요? 이 사람들 가난뱅이들이에요. 하는 시골에서 자라온 촌뜨기고 다른 한 사람은 술집에서 일하는 모델이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쫓아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임시월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상준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고씨 집안 도련님이거든요. 해성시 고씨 가문이라고요. 눈치 있게 행동하지 그래요!” 고상준은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임지연은 이 남자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 사장은 육진우에 대한 임시월의 평가를 듣고 나자 안색이 더욱 흐려졌다. 육씨 가문이 정말로 화가 나게 되면 하찮은 해성시의 고씨 가문을 밟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이였다! 다만 방금 육진우의 태도로 보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사장은 그저 무덤덤한 말투로 답하고 있었다. “여긴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으니까 이만 떠나 주세요.” 임시월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해성시에서 가장 유망한 이 웨딩숍에서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왔던 건데 되레 내쫓겼으니 말이다. 곧이어 그녀는 얼굴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제정신이야! 눈이 멀었어! 이분은 고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감히 우릴 내쫓아! 여기 해성시에서 쫓겨나고 싶어?” 고상준도 그 사장님의 태도에 약간 불쾌해진 건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고씨 가문을 건드린 후과가 두렵지도 않아?” 사장은 여전히 태도가 강경했다. “여긴 육신 그룹에 소속해 있는 브랜드예요. 불만이 있으신 거면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좋아요.” 육신 그룹? 고상준은 그 답을 듣고 나자 얼굴빛이 약간 변했지만 임시월은 전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채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느 그룹 소속이던 우리하고 뭔 상관이야. 우릴 건드리면 해성시에서 쫓겨날 줄 알아!” 임시월의 분풀이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고상준은 그녀를 끌어당겼다. “나가자.” 임시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여기서 웨딩드레스를 고르기로 했잖아...”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고상준이 말을 가로챘다. “나가자고!” 고상준은 임시월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언성을 높이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한바탕 해프닝이 끝난 후 사장은 육진우한테로 다가와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넸다. “육진우 씨, 웨딩드레스를 찬찬히 둘러보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주시기 바래요.” 육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내하고 천천히 둘러보도록 할게요.” 사장님은 그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자 무거운 짐을 벗은 기분이었다. 아까 그 멍청한 여자가 하마터면 육진우의 미움을 살 뻔했었다! 사장이 떠나고 나자 임지연은 이상한 표정으로 육진우를 살펴보았다. “저 사람은 왜 진우 씨한테 이렇게 공손한 거예요?” 해성시에서 고씨 가문의 명성은 손에 꼽힐 정도인데 그 사장은 육씨네 가문을 건드린 대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육진우를 도와줬으니 말이다. 육진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성을 띤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연 씨 생각은 어떤데요?” 어리둥절하기만 한 임지연은 육진우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더니 준수한 외모가 단점 하나 없이 완벽했다.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 추측을 이어갔다. “혹시 여기 사장도 고객이에요?” 사장이 하도 공손한 터라 그녀는 이쪽으로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육진우는 웃음이 한층 더 짙어져 갔다. 침묵을 지키는 그가 묵인하는 거라 여긴 임지연은 그의 개인사를 존중해 더는 캐묻지 않았다. 곧이어 임진우는 흰색의 심플한 드레스를 골랐다. 직원은 매우 정중하게 약속을 정하고 있었고 그들한테 메이크업사와 스타일리스트도 마련해 주어 그날 결혼식에서 도와줄 거라고 했다. 다른 한편. 웨딩숍에서 나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임시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상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오빠와 결혼하기로 했는데 결혼 장소는 그렇다 치고 이제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도 내 마음대로 못 골라?” 고상준은 임시월을 한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 웨딩숍은 육신 그룹에 소속돼 있는 브랜드야. 우리가 건드릴 만한 그룹이 아니라고! 웨딩드레스는 다른 매점에 가서 보자.” “난 여기 웨딩드레스를 사고 싶단 말이야!” 화가 풀리지 않는 임시월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고상준은 시끄러운 그녀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예전에 임지연하고 연애할 때는 항상 지적이고 대범한 태도를 보이며 생떼를 부린 적이 없었는데 임시월은 그에게서 자꾸만 뭔가를 뜯어내려 하고 있다. 고상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말투에도 인내심이 사라진 듯했다. “나 먼저 돌아가 볼게.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카드 긁어.” 말을 마치고 난 그는 임시월을 혼자 내버려두고 곧장 자리를 떠나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임시월은 고상준을 뺏어온 이후로 임지연을 처참하게 밟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임지연한테 밀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어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임시월은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임지연하고 황인호의 혼담이 결정 난 마당에 아버지가 임지연이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걸 알면 아마 미쳐 날뛸 것이다! 임시월은 즉시 임건국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해성시 중심에 위치해 있는 쇼핑몰로 와! 임지연이 그 남자 모델이랑 웨딩숍을 돌고 있어. 결혼식도 치르려는 것 같더라고! 아빠 말을 아예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것 같아!” 임건국은 임시월의 전화를 받고 나자 버럭 화를 냈다. “어디서 감히 부모의 명을 거역해! 잘 지켜보고 있어! 당장 그리로 갈게! 걔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반드시 황인호한테 시집을 가야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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