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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비록 어리둥절하기는 하지만 어르신하고 육진우가 날짜를 정한 마당에 그녀도 반박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이마를 살짝 짚고 있었다. 고씨네 가문이 해성시에서 어느 정도의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다 설령 고씨네 가문의 집권인이 고상준이 아니라고 해도 체면을 세워야 하니 결혼식을 성대하게 차릴 게 뻔하다. 만일 그들한테 육진우하고 같은 날 결혼을 한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아마 일부러 찾아와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육진우가 가족 기업과 비교할 바가 못 되니 말이다. 머리 아프네! 됐어! 어차피 비웃음이나 당하겠지 뭐! 어르신의 호의를 저버릴 수는 없잖아! 그리고 이제 그녀는 시답잖은 인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몸이 편찮은 어르신은 저녁을 마친 뒤 방으로 돌아갔고 임지연은 어르신의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 남기로 했다. 식사 자리가 끝나자 그녀는 소파에 다소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육진우가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녀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육진우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짜 할머니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거예요?” 임지연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일단 침과 약으로 몸조리를 해보는 거예요. 제가 방금 맥을 짚어봤었는데 할머니가 아마도 이 병으로 10년 정도 앓아오신 것 같더라고요. 대략적인 증상은 두통이나 기침 그리고 숨이 가쁜 거죠?” 육진우는 얇은 입술을 약간 오므리며 눈 밑에 의심이 스쳐지났다. 임지연이 추측한 게 맞긴 하지만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철통 보안을 한 것도 아닌지라 진료기록을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들이다. 혹시 애초에 임지연이 목적을 가지고 나한테 접근한 건가? 내 신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그러한 의심을 가지게 되자 육진우는 눈가에 한기가 맴돌았고 임지연은 그런 그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할머니는 병이 아니라 중독에 걸린 거예요. 10년 전에 뭐 이상한 음식을 한 달 동안 먹은 적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 나중에 영양이 가득 담긴 음식들을 과하게 섭취해서 몸이 나날이 허약해지고 있는 거거든요.” “중독이요?” 눈을 비스듬히 뜨고 있는 육진우는 말투가 무거워졌다. “네, 맥을 짚어봤는데 정확히 중독의 징후군이에요. 다만 시간을 오래 걸쳐서 걸린 독이라 진단 보고서가 있어야만 확인이 가능해요.” 육진우는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서는 고향에 있어요. 내일 가져오라고 할게요.” 임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회상해 봐요. 10년 전에 할머니가 무슨 음식을 한 달 동안 섭취했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임지연의 단호한 말을 듣고 나자 육진우는 그녀에 대해 믿음이 어느 정도 가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늘 일은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전에 우리 집에서도 저를 도와 줬었잖아요. 그냥 보답해주는 거라 생각해요.” 임지연은 담담하게 미소를 보였고 구부린 눈가로 보이는 눈동자는 별빛 바다가 비치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육진우는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제가 누군지 알아요?” 임지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육진우 씨요.” “그럼 제가 무슨 일하는데요?” 육진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임지연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그녀는 그가 할머니한테 자신의 신분이 들킬까 걱정하는 거라 생각하며 그의 어깨를 툭툭 토닥여주었다. “걱정 말아요. 육진우 씨의 신분은 제가 비밀로 지킬게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속 이 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게 그다지 좋은 대책은 아닌 것 같아요. 일자리를 바꾸세요.” 임지연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나자 눈밑에 드리웠던 의심이 풀린 육지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임지연의 손을 잡아당겼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오늘 밤에 저하고 같은 방에서 자요.” 잠긴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오자 임지연의 얼굴은 삽시에 빨개졌다. 그녀는 입을 뻥끗거리며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순간 벙어리가 된 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숨을 고르고 난 그녀는 더듬더듬 몇 마디를 내뱉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육진우는 눈앞의 여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입술을 오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어때서요. 지금은 제 아낸데 저하고 같은 방에서 지내는 게 마땅한 거 아닌가요?”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린 임지연은 약간의 경계 태도를 보였다. 육진우는 그런 그녀를 더는 놀리지 않았다.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저하고 같은 방에서 자지 않으면 할머니가 의심할 거예요. 그리고 지연 씨는 침대에서 자고 저는 바닥에서 잘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을 듣고 나자 임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필경 육진우가 남자 모델이라는 신분인데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임지연이 한시름을 놓고 있자 육진우는 솔직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큰 몸을 구부리고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멈추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죠.” 그의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육진우는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은 의외로 한산하기만 했다. 흑백색으로 꾸며져 있는 방은 필요한 가구 외에 간결하고도 싸늘한 기운이 풍기는 게 사람이 사는 방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육진우는 옷장에서 패드와 이불을 꺼내 침대 옆에 깔았다. “세수하고 일찍 자세요. 잠옷은 옷장 안에 준비돼 있어요. 다 새것이라 아무거나 입으면 돼요.” 남자하고 같은 방을 써 본 적이 없는 임지연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허나 그 당시 만취를 한 그녀를 육진우가 어찌하지 않은 걸 떠올리면 육진우가 정인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오 늘밤 뒤척이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 밖으로 깊은 잠을 잤었다. 그렇게 아침 8시가 다 되어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육진우는 방에 없었고 방 안의 모든 것들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시간을 힐끗하던 그녀도 차림을 잘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르신은 그녀가 어제 했던 말대로 싱거운 요리들 위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임지연이 내려오는 걸 보자 어르신은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지연아, 깨어난 거야. 힘들면 푹 쉬지 그래. 이따가 밥을 가져다주면 되거든.” 임지연은 어르신이 오해했다는 걸 눈치챘으나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할머니, 저 괜찮아요.” 어르신은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옆에 앉혔고 육진우는 마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오늘 그는 회색 후드티와 편안한 바지로 비교적 캐주얼한 복장 차림이었고 위로 올린 머리가 더불어져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오늘 아침에 결혼식 장소도 다 정해놨어. 너희들은 밥 먹은 뒤에 웨딩드레스 고르러 가. 나중에 할머니가 도성시로 돌아가서 우리 지연이를 위해 하나 더 맞춤 제작할 거야.” 어르신의 말투에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래요.” 육진우는 흔쾌히 그 의견을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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