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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욕실에서 나온 후 그는 마치 밤의 서리를 적신 듯 온몸에 한기가 감돌았다. 돗자리를 깔아놓은 침대에 누워서 두 눈을 감았지만 아무리 자제하려 해도 좀전의 화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늘 차갑고 무덤덤하기만 하던 민준혁은 난생처음 이런 경험을 하게 됐다. 심지어 상대는 그가 너무 혐오하는 위선적이고 권세에 눈이 먼 여자였다. 더 높은 곳에 기어오르려고 정지호에게 수작을 부리는 그런 여자 말이다. 민준혁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 소설책을 펼치더니 그대로 종잇장에 베끼기 시작했다. 절대 이대로 머리가 썩어 문드러지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더는 퇴폐해질 수가 없었다. 다음날 소은비는 여전히 네 시 반에 일어났는데 하얀색 속옷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씻어도 마를 수 없으니 마지 못해 그대로 짐보따리에 넣었다. “아이고, 은비 씨, 어쩐지 어젯밤에 늦게 자는 것 같더라니. 밤새 옷을 싹 다 빨아놓은 거예요?” 오수미가 문을 열자 마당에 걸린 다 마른 옷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저도 몰래 감탄을 연발했다. “아줌마, 제가 딱히 어떻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몰라서 대신 옷을 좀 빨았어요.” 소은비는 혀를 날름거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마냥 친절할 따름이었다. “지금 바로 밥 지어놓을게요. 다 짓거든 교장님 댁으로 가야 해요. 이따가 할머니랑 아저씨 다 깨시면 아줌마가 대신 얘기 좀 전해주세요.” 오수미는 참하고 단아한 소은비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철들고 예의 바르며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하면 돼요. 얼른 그 댁으로 가보세요. 이 옥수수 두 개는 가는 길에서 드세요.” 오수미가 그녀를 붙잡고 삶은 옥수수를 두 개 건넸다. 요즘은 줄곧 소은비가 오수미를 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밤에 잘 땐 오수미를 불편하게 할까 봐 항상 구석에 숨어서 잤고 모기장 밖으로 다리가 나오다 보니 벌써 몇 군데나 물렸다. 다만 이 집안에서 민용수 사령관만 그녀에게 잘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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