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이에 대해 별다른 이유는 딱히 없고 단지 어떤 일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나을 듯싶었다. 말을 많이 하면 괜히 부작용만 커질 것 같았다.
물이 끓자 안이서는 돌아서서 국수를 삶느라 이 남자의 얼굴에 스친 기색을 살피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집주인 아줌마 조카처럼 준호 씨도 대기업 직원이죠?”
집주인 아줌마의 조카라, 연준호는 어제 혼인신고할 때 안이서가 전화를 받으며 얼핏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았다.
“원래 네가 소개팅하려던 그 남자 말하는 거야?”
그는 슬쩍 떠보듯이 안이서에게 물었다.
“맞아요. 아줌마 조카는 은성시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다닌대요! 대단하죠?”
그녀는 국수를 삶으며 부러움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연준호는 문득 이 말에 흥미를 느끼고 건장한 체구로 주방 문 쪽에 비스듬히 기대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은성시에서 제일 좋은 회사가 뭔데?”
“있잖아요, 연성 그룹. 준호 씨 몰랐어요?”
안이서는 돌아서서 부러움에 찬 눈길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대학교 졸업할 때 이력서 넣었는데 결국 묻혀버렸는지 아무런 회신이 없었어요.”
안이서는 국수를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회사는 엘리트들만 들어갈 수 있대요. 나 같은 사람은 잡일도 못 할걸요.”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탓인지 안이서는 학습 성적이 꽤 우수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열등감이 남아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연준호가 물었다.
“이력서 언제 넣었는데?”
“작년 7월쯤일 거예요. 구체적인 날짜까진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줄곧 연락이 없었어요.”
안이서는 국수를 건져내고 방금 만든 육수를 부었다. 감칠맛 나는 국수가 그렇게 완성됐다.
두 사람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연준호는 이런 평범한 잔치국수를 평상시에 거의 볼 기회가 없다.
한편 맞은편의 안이서가 크게 한 입 먹자 그도 따라서 젓가락을 들고 맛을 보았다.
맛과 비쥬얼을 모두 갖춘 잔치국수였고 안이서의 뛰어난 요리 솜씨를 보아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아 참, 준호 씨도 연씨 성인데 연성 그룹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나요?”
국수를 먹던 안이서가 갑자기 예리한 질문을 내던졌다.
“연씨 성이 흔한 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한 집안인 것도 아니야.”
연준호는 가슴이 바짝 떨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돈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안이서도 똑같은 사람인지라 다를 바가 없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 걸까?
이제 고작 알고 지낸 지 이틀째라 연준호는 그녀의 성품에 대해 잘 모른다. 집안 출신은 쉽게 조사해낼 수 있지만 성품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었다.
안이서는 복잡한 생각이 없었던지라 연준호의 감정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일리 있네요. 준호 씨 매일 바쁘시죠? 내일 아침에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만들어줄게요.”
연준호는 매일 연성 그룹의 정상적인 운영을 지켜봐야 한다. 회사와 무관한 일들은 일절 사소한 일로 귀납하여 비서가 사람을 시켜서 미리 다 세팅해놓을 것이다. 굳이 그가 일일이 신경 쓸 범주가 아니었다.
한편 그가 여태껏 안이서에게 아무것도 안 알려줬는데 지금 이렇게 묻는다는 건 정말 이 남자를 평범한 워크맨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네가 먹는 거로 1인분만 더 해주면 돼.”
연준호는 가리는 음식이 없다. 그의 일을 지체하지 않는 선에서 뭐든 다 된다.
“네.”
안이서가 웃으며 답했다.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안이서는 설거지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둘은 각자 제 방으로 들어가 또 하루의 고요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안이서는 일찍 일어나 풍성한 아침상을 차렸다.
연준호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한 뒤 아래층에 내려왔는데 식탁에 놓인 샌드위치, 우유, 두유, 계란 프라이, 오렌지 주스와 야채 샐러드까지 멍하니 바라봤다. 안이서는 플레이팅이 예술이라 오성급 호텔 뷔페처럼 보는 사람에게 식욕을 돋우는 효과까지 내주었다.
“일어났어요? 준호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두루두루 만들어봤어요.”
안이서는 말하면서 그와 함께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연준호는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는데 향긋한 풍미에 맛도 꽤 괜찮았다. 그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평가까지 해댔다.
“음식 솜씨 있네? 플레이팅도 예쁘게 잘하고 말이야.”
“이런 양식 플레이팅 스킬은 고등학교 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배웠어요.”
안이서는 살짝 득의양양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그녀는 뭐든 잘 배우고 성격이 좋아서 어딜 가나 환영받는 인물이고 또 말주변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많은 걸 터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했어? 꽤 고생했겠네.”
연준호는 말하면서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요 이틀 함께 지내면서 이 여자가 뭐든 잘 해낸다는 걸 새삼스레 발견했다.
“뭘요.”
안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땐 그 집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안이서는 가게로 나갔고 연준호는 서재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비서에게 작년 7월의 모든 이력서를 조사해내라는 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