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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백정연은 안이서가 연준호 앞에서 마치 작은 메추라기처럼 움츠러드는 반응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이미 100만 자 분량의 로맨스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앞에 있는 크고 위풍당당한 연준호와 작고 귀여운 절친 안이서를 번갈아 보았다. ‘이거 완전 대형 늑대와 작은 토끼의 완벽한 케미! 최고의 커플이잖아!’ ‘정말 너무 대박인데.’ 백정연은 한밤중에 경찰서에 들렀다가 이런 엄청난 수확을 얻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서야, 너무 늦었으니까 난 이제 얼른 집에 갈게. 내일 가게에서 보자!” 친구에게 눈치 없이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백정연은 연준호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마치 핫한 기삿거리를 얻은 기자처럼 자상한 미소를 띠며 차를 몰고 떠났다. 백정연을 배웅한 뒤 안이서는 연준호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해요. 또 폐를 끼쳤네요.” 안이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항상 상대방에게 빚을 지는 것 같아 그 빚을 갚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 안이서가 마치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며 연준호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안이서, 너 결혼했다는 거 잊었어? 이게 무슨 폐를 끼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나한테 연락해야지.” 순간 혼날 줄 알았던 안이서는 연준호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라 살짝 당황했다. 그 순간 안이서의 마음속에 따스한 감정이 살짝 피어났다. ‘이 남자 겉으로는 무서운 사람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속이 참 따뜻한 사람이네.’ 그런 생각이 들자 안이서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정신이 없어서요.” 안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불협화음같이 듣기 싫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어머, 이거 우리 사위 아니야?” 소현정이 다가오며 말을 건네자 안이서는 반사적으로 연준호 앞을 막아섰다. 아니면 소현정이 그의 손을 붙잡았을 것이다. 이렇게 뻔뻔하게 ‘가족’인 것마냥 말하는 건 소현정의 특기였다. 어릴 때부터 소현정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든 자기 친아빠라고 우길 정도였다. “제발 좀 그만해요! 무슨 사위에요? 우리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헛소리 좀 하지 마요!” 안이서는 소현정의 행동에 혐오감이 들었다. 연준호가 지금 그녀의 남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하해령의 사위이지 소현정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었다. 연준호는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사람을 많이 겪어본 그의 눈에 소현정 같은 사람은 단번에 어떤 사람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안이서가 왜 가족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갔다. 이런 새엄마를 두고 살면 정말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오전 연준호는 회사에서 비서 허연우에게 안이서의 개인 자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었다. 그 자료에는 안이서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친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안이서의 아버지는 와이프의 사망 보험으로 새 와이프를 맞이해 아들을 낳았다고 적혀 있었다. 새엄마가 들어온 뒤로 안이서와 언니 안채아 모두 딸이고 또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가정이라 점점 더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소현정이 뻔뻔한 표정으로 연준호를 향해 말했다. “사위, 우리 딸을 데려갔으면 부모님한테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서 아직 어린데 사위도 같이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하자. 이번 주 안으로 집에 와서 식사 한번 해.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하자.”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그 순간 안이서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이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소현정와 안재원이 자신을 이용해 이씨 가문과 거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이서는 소현정이 첫 대면에, 그것도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서 돈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뻔뻔할 줄은 정말 몰랐다. 순간 안이서는 소현정와 안재원에 대한 혐오감이 더 깊어졌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이때 소현정이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이서야, 그냥 착하게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사위가 네가 대학 때 했던 일들에 대해 알게 되면...” 그러더니 일부러 말을 끊고는 연준호를 힐끔 쳐다보며 비꼬듯 말했다. “그거 알면 안 되겠지, 안 그래?” ‘대학 때?’ 안이서는 소현정이 어떤 일을 말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때 백지효와 기숙사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 일로 학교에서 끝까지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당시 소현정이 어떻게 알았는지 안이서가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학교로 쳐들어와 동생 학비를 대라고 돈을 요구했었다. 그리고 안이서가 돈을 주지 않자 소현정은 안이서가 몸을 파는 일을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당시 안이서와 함께 있던 선배는 그녀를 세 달간 쫓아다녔는데 소현정이 그 소문을 퍼뜨리자 바로 안이서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일부러 자신과 밀당하며 돈이 부족해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그때 캠퍼스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때의 그 불편함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베는 것 같아 숨이 막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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