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에:: Webfic
제8장 구류
진영재는 아주 단호하게 떠났다.
강유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전혀 멈춤이 없었고 오히려 그와 민연서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마치 그녀가 제일 안 어울리는 삼자 같았다.
강유나는 속이 울렁거려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풀밭에 쪼그려 가득 토했다.
교통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얼굴이 새하얬는데, 하마터면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오해할 정도였다.
우연한 오해였다.
경찰서에서, 강유나는 절차대로 진술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후, 유치장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늦은 밤, 면허증도 없이 운전한 데다, 공공시설을 파손했기 때문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구류를 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경찰이 영수증을 건네고 떠났지만, 그녀가 낮에 김선영의 병원비를 납부했고, 가방에 차에 두고 왔고 휴대폰 잔액이 부족해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경찰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진 걸 느꼈다.
마치 수억짜리 차를 운전하면서 보상금도 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유치장 안은 텅 비어 있어 다소 차가웠다. 강유나는 한쪽 구석에 움츠려 앉았다.
진영재가 떠나기 전 던진 그 말이, 그녀의 여린 자조심을 깊이 찔렀다. 그녀는 진영재가 자비를 베풀어 자신을 떠올리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진영철한테 구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는 늦은 밤에 진씨 가문의 그 누구한테도 연락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구경하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녀와 진영재가 싸워서 진씨 가문에 난리가 나기를 바랐다.
강유나는 차가운 벽에 기댔고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녀는 그제야 그동안 자신이 진영재만 쫓아다녔기에,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옆에 엎어 놓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우스운 건지 아니면 불쌍한 건지 몰랐다.
한참 멍하니 있자, 지나가던 여경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 물었다.
"가족들이 언제 도착해요?"
강유나는 순간 민망해나서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고 귀까지 빨개졌다.
"곧 올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눈빛까지 흔들렸는데 아직 연락이 안 닿은 게 분명해 보였다.
여경은 시간을 보았고, 그녀가 여기 한참이나 있었기에 재촉하며 말했다.
"빨리 오라고 해요."
강유나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경은 입을 삐죽거렸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족한테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마 무슨 일이 있다는 거였다.
그들이 평소에 사건을 해결하다 보면, 내연녀가 스폰서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걸 많이 보았었다. 그중에 젊고 예쁜 여자들이 많았는데, 사고가 나고 나면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가족과 친구들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여경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보온병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갔는데 출동을 마친 오현우와 마주쳤다.
그는 지친 모습으로 들어왔다. 급히 응급센터에서 돌아온 거였다. 한밤중에 중대한 교통사고로 사람과 차가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기에 지금 돌아온 그의 경찰 제복의 소매에도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두 사람이 마침 서로의 길을 가로막았다.
여경은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짓자, 오현우가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
"아연아, 왜 아직도 안 갔어?"
그 말을 듣자 천아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현우 오빠, 돌아왔네요!"
그녀는 말하면서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에 있던 사고 기록서와 납부 영수증을 함께 건네며 말했다.
"가고 싶지만 일 처리가 안 끝났고, 여기 사람도 적어서 계속 같이 있어야 해요."
오현우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경찰서에 오는 사람들은 빨리 벌금을 내고 가려고 하는데, 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길로 기록서를 보았고, 대충 사건의 전개를 훑어본 후,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돈만 내면 곧바로 풀려날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에서 차량 소유자의 이름을 본 순간 멈칫했다.
진영재.
오현우는 눈까풀이 뛰었고 갑자기 뭔가 떠올라 피가 묻은 겉옷을 옆에 놓으며 말했다.
"지금 어디 있어?"
천아연이 위치를 알려주자 오현우는 바로 납부 영수증을 들고 재빨리 떠났다.
유치장 안.
강유나는 여전히 구석에 쪼그리고 두 손으로 휴대폰을 꽉 쥔 채로 김선영한테 연락할 지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김선영도 별다른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파기도 했고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 강유나가 암울해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피부가 어둑했고 짧은 머리와 넓은 어깨, 날씬한 허리를 가진 큰 키의 남자였다.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표정이 다소 장난스러웠다.
"강유나 씨?"
그러면서 성큼 다가와, 납부 영수증을 강유나한테 건네며 마치 오래 아는 사이처럼 말했다.
"가봐도 돼요."
강유나는 멈칫했다. 그녀가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영수증을 보니 확실히 납부되었다.
그녀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묻기 전에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걱정 마요, 갚을 필요 없어요."
오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어깨를 움켜잡고는 약간 자랑스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할배가 대신 돈을 낸 겁니다."
강유나는 멈칫했다. "진"이라는 이름과 그의 표정을 보자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진할배가 누구지?
옆에 있던 천아연이 휴대폰을 들고 급하게 쫓아왔다.
"현우 오빠."
그녀는 두 사람을 훑어보고서야 말했다.
"방금 깜빡하고 말 못 했어요, 오빠가 출동하고 나서 휴대폰이 몇 번이나 울렸어요, 하지만 개인 번호라 받기 그래서 안 받았어요."
오현우가 휴대폰을 건네받고 번호를 보았는데 바로 표정이 변했다.
"망했다."
그의 놀라움과 함께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와서, 강유나가 머리를 들어보니 진영재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오현우, 저녁에 왜 전화 안 받는 거야, 죽은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