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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4장 인연

배진욱의 얼굴을 보자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안민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안민혁을 못 본지 도 며칠이 되어가는데. 안민혁은 이번에 내가 다쳤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무척이나 바쁘겠지.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하고, 배진욱과의 협업 건도 추진해야 하고, 내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다시 마음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희주야, 내가 말했었잖아. 너는 민혁 씨와 결혼할 수 없어.” 배진욱은 내 침대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순간 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 아직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를 썼다. 배진욱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배진욱이 정말 나를 좋아한다면 결코 나를 망가뜨리는 그런 짓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배진욱이 지금 나한테 하는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거다. 배진욱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 했고 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움직이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리고 너무 세게 움직인 탓인지 상처가 아파져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건 배진욱이 전에도 습관적으로 하던 동작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우리 사이에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다. 배진욱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물었다. “왜 나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의사 선생님은 뭐라셔? 그래도 이번에는 열도 안 나고 쓰러지지도 않았잖아. 대단한걸.” “덕분에.” 나는 무표정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배진욱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배진욱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꼴로 누워있을지 모른다. 배진욱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더 시비를 걸지 않았고 앉아서 가끔 자신의 등을 만질 뿐이었다. 배진욱은 나에게 눈치를 주고 있는 거다. 자기도 다쳤다고, 그것도 나를 구하기 위해 다쳤다고 말이다. “괜찮아? 심하게 다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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