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장 룸메이트

배성훈은 아주 빠르게 회사 건물 10층에서 절반의 공간을 떼어 내 사무실을 마련해주었다. 공간이 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회사 직원은 나 혼자뿐이었으니. 하지만 배성훈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난 배성훈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같은 건물에 있다면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텅 빈 사무실을 보며 난 고개를 저었다. 일손을 많이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배성훈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형수님 죄송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이 공간뿐이에요. 이것도 작은 할아버지가 허락해서 겨우 얻은 거예요.” “그래도 너무 걱정마세요. 전기세, 물세, 월세 이런 건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도 우리 회사니까요.” 난 입술을 매만졌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내 능력으로 이렇게 큰 공간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재연 그룹을 위해 일하기로 했으니 그쪽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배성훈은 또 배진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배진수가 회사 내부에서 세력을 계속 키워가는 것 같다고 했다. “여러 팀의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을 모두 바꿔버렸어요.” “게다가 주식도 계속 모으고 있고 주주들의 환심도 사고 있으니 이러다가...” “그건 제가 관심을 가질 부분이 아닌 것 같네요.” 난 배성훈의 말에 의견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쪽 사정은 이제 나와 상관이 하나도 없었다. 배진욱이 깨어나고 몸 어딘가 문제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배성후는 회사를 배진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남은 건 배진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배성훈을 보내고 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수신자는 장승희였다. 졸업 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터라 난 조금 당황했다. 전화를 받자 흥분에 겨운 장승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주야, 고채영이랑 최지연 두 사람 모두 네 회사에 있는 거야?” “그럼 세 사람이 같은 회사? 나 지금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바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