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곧이어 김소정은 넋을 잃고 말았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 그리고 온몸의 근육 라인은 완벽에 가까웠다.
등에 길고 짧은 손톱자국이 나 있었는데 머릿속으로 별안간 어젯밤의 격정적인 순간이 떠올랐다.
“왜? 남자 몸이 그렇게 좋아? 눈을 떼지 못하겠어?”
갑작스러운 코웃음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소정은 태연한 얼굴로 지갑을 시트에 내려놓았다.
“물건이 떨어졌더라고요.”
말을 마치고 나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주여정을 향해 걸어갔다.
정지헌은 셔츠 단추를 잠그면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삼촌과 결혼한 이상 다른 남자한테 관심 끄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평생 장님으로 살아갈 줄 알아.”
잔인하고 무정한 말에 김소정은 두려우면서도 섬뜩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엄마, 다리는 좀 어때요?”
이내 주여정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리를 살폈다.
주여정이 씩씩거리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왜 이제 와?”
그러고 나서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사모님과 아가씨가 의사를 불러서 치료해준 덕분에 큰 문제는 없어. 가벼운 골절상이래.”
그제야 김소정은 옆에 있는 노수영과 신지수를 바라보았다.
주여정이 가정부로 일한 지 꽤 오래되어 그녀도 신씨 저택에 자주 드나들었다. 노수영은 딸이 버리는 옷들을 가져가서 입히라고 매번 챙겨주기도 했다.
그동안 모녀의 태도가 도도하고 쌀쌀맞은 건 사실이지만 은근히 무시해도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적대감으로 가득했다.
김소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때, 정지헌이 다시 걸어왔다.
신지수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모시고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 조심해서 가요.”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의아한 김소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다음 주여정을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김소정을 바라보는 정지헌 때문에 신지수는 질투심을 감추지 못했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했다.
“혹시 아는 분이에요?”
정지헌은 입술을 꾹 닫고 묵묵부답했다.
신지수가 한마디 보탰다.
“아줌마도 어떻게 보면 참 안 됐어요. 우리 집에서 여태껏 가정부로 일한 것도 다 자식들을 위해서였죠. 다만 하나같이 불효자라... 큰딸 김소정 씨만 하더라도 사생활이 엉망이라고 하던데 어젯밤에 글쎄 남자랑 밤새 그런 짓을 했대요. 아줌마가 얼마나 화를 내던지...”
“지수 씨.”
정지헌은 김소정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이내 하트 목걸이를 꺼내 다시 물었다.
“이게 뭔지 기억났어요?”
신지수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제 물건인데 당연히 기억하죠. 아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을 뿐이에요. 어쩐지 목이 허전하다 했더니 글쎄 목걸이가 사라졌더라고요. 우리 엄마가 절에 가서 기도하고 받아 왔어요. 가장자리는 금, 가운데는 옥이 있죠.”
그녀의 말에 정지헌은 비로소 의심을 거두었다.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식은 한 달 안에 진행할게요. 물론 언제든지 거절해도 돼요.”
“거절이라뇨!”
신지수가 서둘러 말했고, 이내 너무 쉬운 여자처럼 비친 것 같다는 생각에 한마디 보탰다.
“그러니까 결혼은 신중하고 성스러운 일인 만큼 한번 결정하면 섣불리 번복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그녀를 바라보는 정지헌의 눈빛이 한결 누그러졌고 명함을 건네면서 말했다.
“언제든지 전화해요.”
그러고 나서 자리를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양지민이 말했다.
“김소정 씨는 신지수 씨가 얘기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데, 제가 한 번 조사해볼까요?”
“아니, 어차피 삼촌이 액땜할 수 있도록 우리 집에 들였을 뿐이야. 만약 정말 깨어나게 된다면 삼촌의 성격으로 100% 이혼할 테니까.”
“알겠어요. 참, 대표님, 건설 현장은 이미 인수 완료했어요. 현장 책임자들과 저녁 8시에 술자리가 있는데 장소는 나이트바입니다.”
“그래.”
...
김소정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주여정에게 약을 발라주었다.
“어쩌다 다쳤어요?”
“바닥이 미끄러워서 삐끗했어.”
주여정은 상처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신이 나서 말했다.
“지수 아가씨가 곧 재벌 집 정씨 가문에 시집갈 거래.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아?”
김소정의 손이 움찔했다.
“정지헌네?”
“맞아! 오늘 지수 아가씨한테 프러포즈하러 왔다니까?”
주여정의 말투가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김소정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시 약을 바르는 데 집중했다.
주여정이 흘긋 쳐다보더니 경고했다.
“똑똑히 들어. 정지헌 씨와 지수 아가씨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중간에서 훼방 놓을 생각하지 마.”
김소정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어차피 다른 세상 사람이지 않겠어요?”
“뭐, 현실을 인식하는 건 좋은 현상이야.”
이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한마디 보탰다.
“엄마 덕분에 타협을 선택했을 뿐이죠. 어차피 이미 결혼한 몸이라 훼방을 놓고 싶어도 자격이 없잖아요.”
원망이 가득한 딸의 말투에 주여정은 서둘러 웃음으로 무마했다.
“오늘 사모님이 귀한 제비집을 챙겨주셨어. 얼른 집에 가서 맛 좀 봐.”
유통기한이 6개월이나 지난 개봉한 제품을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어머니를 보며 김소정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여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쪽에서 2억 보냈더라.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왜 얼른 병신 남편을 얼른 보살피라고 하지 않는 거지? 물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집에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 막상 널 보내려고 하니까 서운하네.”
김소정은 정씨 가문에서 이대로 그녀의 존재를 잊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때, 강다은의 문자가 도착했다.
[방금 입수한 소식! 건설 현장의 새로운 담당자가 오늘 저녁 8시에 나이트바에 갈 거래. 만약 현장에서 일하고 싶으면 그 사람한테 부탁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