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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도와주세요... 제가 꼭 책임질게요...” 어두컴컴한 방, 김소정은 남자의 품에 안겨 힘겹게 약속을 다짐했다. 뜨거운 숨결이 뒤엉키면서 체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남자는 여자의 턱을 움켜잡았다. 몸의 열기와 욕망은 방금 마신 술에 문제가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내 손아귀에 힘이 점점 들어갔고 꽉 잠긴 허스키한 목소리에 혐오와 조롱이 짙게 배어 있었다. “새로운 수법 중 하나인가?” “아니... 읍!” 하지만 대답하기도 전에 뜨거운 키스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렇게 본능에 몸을 맡긴 두 남녀는 긴긴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김소정은 차에 치인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어젯밤 남자는 한 마리의 맹수를 연상케 했고, 마치 함정에 빠진 사람이 그녀가 아닌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은 그가 아직 옆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 이내 본능적으로 움찔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등지고 누워 있었기에 보이는 거라고는 깔끔하고 풍성한 짧은 머리카락과 넓은 등밖에 없었다. 소중한 첫 경험을 낯선 남자에게 바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제를 떠올리자 김소정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형 건설 현장의 소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다친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심지어 거물급 인사라고 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감옥에 갇혔고 1년도 채 안 되어 병으로 돌아갔다. 임종 직전까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은 결백하다며 꼭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건축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땄고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건설 현장에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채용이 안 되었고, 막일이라도 괜찮다고 했지만 출입 자체가 불가했다. 결국 어젯밤 아는 사람을 통해 건설 현장의 사장과 약속을 잡았는데 함정에 빠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배불뚝이 아저씨를 따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황급히 도망치다가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옆에 있는 남자를 마주치게 되었다. 당시 괴로움에 시달린 나머지 품에 와락 안겨 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도움을 받은 입장이었다. 머릿속으로 어젯밤에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말이 떠오르자 김소정은 머뭇거렸다. 애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섣부른 맹세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고민한 끝에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쪽지 한 장을 남긴 다음 목에서 반쪽짜리 하트 목걸이를 풀어서 쪽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침대 옆으로 가서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들었다. 이때,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신음을 내더니 몸을 뒤척였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김소정은 흠칫 놀랐다. ‘이런! 정지헌이었어?’ 무려 아르헨시에서 소문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존재이지 않은가? 원나잇 상대가 전설 속의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남자라니? 설마 나중에 깨어나면 그녀의 목숨이라도 노리는 건 아니겠지? 김소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쪽지와 하트 목걸이를 가져가려는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이를 악물고 재빨리 발코니로 도망갔다. 그녀가 묵었던 리조트는 전부 독채로서 방이 1층에 있기에 창문을 열자마자 푸른 잔디밭을 마주하게 되었다. 침대 위의 남자가 눈을 뜨는 순간, 김소정은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발코니 난간을 뛰어넘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정지헌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 “대표님, 어젯밤 아무 일 없었어요?” 비서 양지민이 다가오더니 정지헌의 어깨에 난 손톱자국을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곧이어 머릿속에 온갖 추측이 떠올랐다. 어젯밤을 회상하는 순간 정지헌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둘째 숙모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사촌 조카 장아진과 엮어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니. 하지만 어젯밤 여자는 왠지 장아진 같지 않았다. 그동안 향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그녀의 몸에서는 오로지 은은한 살 내음밖에 안 났다. 여자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떠올리자 정지헌은 저도 모르게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자제력이 강한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어젯밤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사실 욕구는 진작에 풀었으나 밤새도록 그녀를 탐했다. 이는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어? 대표님, 여기 쪽지가 있네요.” 쪽지를 펼치는 순간 정지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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