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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날 밤, 신수아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부터 주강빈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해, 수아야... 유리가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며칠 입원해야 할 것 같아.” “도영이가 동생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병원 신세까지 지게 했네... 요 며칠은 유리 돌봐야 하니 혼자 집에서 지내. 퇴원하거든 바로 돌아갈게.” 신수아는 매우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괜찮으니까 유리 옆에 있어 줘.” ‘앞으로 평생 유리 옆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사흘 뒤면 바로 이곳을 떠난다. 디데이를 세고 있을 때 차유리가 불쑥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영상 속 차유리는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왕관을 쓰고서 똑같이 생일파티를 열었다. 선물로 가득 찬 파티 현장 한가운데 주강빈이 그녀를 백허그하면서 다정하게 속삭였다. “공주 생일 축하해. 이루고 싶은 소원 있어?” 차유리가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살짝 치켰다. “나도 수아 언니처럼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줘요!” 주강빈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콧등을 살짝 꼬집었다. “알았어. 우리 공주 소원은 다 들어줄게.” 신수아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 영상을 저장하고는 집 밖을 나섰다. 그녀는 주강빈이 사인한 백지를 챙기고 로펌으로 향했다. “신수아 씨, 이혼합의서는 다 작성했어요. 여기 사인만 하시면 두 분은 완전히 이혼하게 됩니다.” 신수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옆에 사인했다. 오늘부로 그녀와 주강빈은 완전히 남남이다. 떠나는 날까지 2일을 남겨두고 차유리가 또다시 동영상을 보내왔다. 영상 속 주강빈은 조심스럽게 차유리의 배에 귀를 갖다 댔다. “이제 고작 3개월인데 뭘 듣는다고 그래요?” 차유리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다만 주강빈은 제법 그럴싸하게 대답했다. “방금 날 아빠라고 불렀어.” 차유리는 활짝 웃더니 잠옷 치마를 반쯤 걷었다. “아기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원한다면 내가...” 그 순간 주강빈이 침을 꼴깍 삼키고 그녀를 침대에 깔아 눕혔다. 이어서 침대가 끽끽거리더니 미칠 듯한 마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빈 씨, 이 자세는... 안 돼... 나 안지 말라고요.” 주강빈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먼저 끼 부렸잖아. 얌전히 있어!” 신수아는 여전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연락해 주강빈이 양도한 지분을 싹 다 팔았다. 그러고는 은행에 가서 그 돈의 일부를 꺼내 외화로 바꿨다. 드디어 디데이 날, 신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녀는 오늘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첫째, 그동안 주강빈에게 받은 선물을 전부 정리해서 별장 도우미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기. 도우미들은 기쁜 한편 어리둥절해졌다. 이 선물들 전부 가치가 어마어마하니까. 이에 신수아가 웃으면서 답했다. “요즘 엄청 기쁜 일이 있어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래요. 부담 갖지 말고 편히 받으세요.” “그리고 오늘부터 별장 청소할 필요 없어요. 밥도 안 지어도 되고 꽃에 물 안 줘도 되니까 일찍 퇴근하세요.” 도우미들은 이런 횡재가 어디 있냐면서 연신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선물을 챙겨서 별장을 떠났다. 두 번째 일은 그동안 차유리가 보내온 도발의 메시지, 영상 및 녹음까지 일일이 정리하는 것이다. 메시지는 사람을 시켜서 백만 부 프린트해서 드론으로 도시 전역에 뿌렸고 영상은 시중심의 가장 큰 스크린에 올려서 종일 플레이해놓았다. 녹음은 확성기를 만 개 사용하여 광장에서 무한 반복으로 재생했다. 세 번째로 짐을 싸고 이혼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때 주강빈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는 여전히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수아야, 나 여기 거의 마무리됐어. 끝나는 대로 돌아갈게.” 신수아는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래. 마침 나도 서프라이즈를 준비했거든.” 주강빈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 자기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까?” 신수아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와보면 알아.” 아니 어쩌면 타이밍이 맞아떨어진다면 오는 길에서 바로 공개될 것이다. 그 문자와 영상과 녹음들까지 전부... 주강빈은 기대에 차서 전화를 끊었지만 신수아는 캐리어를 챙기고 집 밖을 나섰다. 가로수길을 걸으며 몇몇 이웃을 마주쳤는데 다들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수아 씨 어디 놀러 가나 봐요?” 신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대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런 여행이 되겠지. 화창한 날, 신수아는 캐리어를 챙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공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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