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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강수지는 갑자기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이변섭을 바라보았다. "왜, 왜 그래..." 그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설마 잠결에 그를 시끄럽게 한 걸까? 아니면 몽유라도 했나?' 이변섭의 낯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강수지는 흠칫 놀랐다. "여기서 자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미안해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 말을 마친 강수지는 허리를 숙여 곧바로 베개와 이불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금방 잠에서 깬 부스스한 강수지의 모습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이변섭은 강수지를 품에 안았다. "난...웁..." 이변섭의 입술이 강수지의 입술을 덮쳤다. 놀란 강수지는 무심결에 입을 벌렸다. 그때 이변섭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풉, 제법 적극적이네?” 강수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입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이변섭이 그녀의 턱을 세게 누르자 강수지는 너무 아파 깊은숨을 들어쉬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이변섭을 받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강수지는 이변섭과 키스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원한이 깊은 사이였으니까. “네가 알몸으로 내 앞에 있다고 해도 난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이변섭이 강수지의 입술을 깨물자 그녀의 입술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다. “강수지, 너는 내 장난감일 뿐이야. 난...... 네가 너무 더럽게 느껴지거든!” 그 순간, 입술에 맺힌 핏방울은 강수지의 손등에 떨어졌다. 강수지는 이변섭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것이며 반항을 할 자격조차 없다. 이변섭은 강수지가 눈에 거슬렸다. "꺼져!" 강수지가 나가려는데 이변섭이 한마디 덧붙였다. “멀리 갈 생각하지 마!” 그렇게 그날 밤, 강수지는 안방 문 앞에서 잠들었다. 그녀는 깊게 잠들 용기조차 없었으며 행여나 이변섭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두려워 선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 8시쯤이 되자,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려 강수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자세로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변섭은 강수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변......변섭 씨.” 강수지는 얼른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방금 잠에서 깬 듯했고 안색이 제법 좋아 보였다. 그녀의 괜찮은 안색을 보자 이변섭은 짜증이 났다. 이변섭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하찮은 것들은 팔자도 하찮나 봐. 네가 잠잘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은 안방 문 앞이야.” 강수지는 이변섭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계속 여기서 잘까요?” “당연하지!” 강수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방 밖에서 자는 건 이변섭의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강수지의 표정이 환해지자 이변섭은 화가 더 치밀었다. “집에서 농땡이 부릴 생각하지 말고 나 따라 회사로 나오도록 해.” 그가 분부했다. "그럴게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변섭은 롤스로이스를 타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강수지는 이씨 그룹까지 걸어서 갔다. 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 사무실 밖은 분주해 보였지만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할 지경이었다. 강수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범 비서님, 제가 도울 일 있을까요?” 이변섭에게 한가해 보이는 모습을 들키면 이변섭은 틀림없이 화낼 것이다. 그러니 강수지는 알아서 할 일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사모님 신분을 아는 사람은 회사에 범지훈 뿐이었다. “아...... 대표님께선 아직 지시가 없으십니다.” 범지훈은 말을 이어가며 사무실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대표님께서 오늘 많이 예민하시더라고요. 이미 부장님 세 분한테 한 소리 하셨어요. 제 생각엔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사모님이 아메리카노라도 들고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좋아요.” 강수지는 커피를 사 들고 이씨 그룹으로 가는 길에 한약방을 지나갔다. 마침 한약재로 약을 달이는 약사 덕분에 은은한 한약 향이 밖으로 퍼져 나왔다. 강수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한약재 좀 구매할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10분쯤 지난 뒤, 강수지는 대표 사무실로 갔다. 그녀가 노크하자 이변섭의 난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사무실에는 이미 회사 고위 간부 두 명이 있었는데 이변섭에게 심각한 욕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깨진 컵도 보였다. 강수지는 몸을 숙여 깨진 도자기 조각을 치웠다. “2주나 지났습니다. 그런데 고작 이따위 마케팅 제안서를 들고 온 겁니까?” 이변섭은 서류를 내던졌다. 그러자 서류는 공중에서 와르르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5일을 더 드리죠. 못 하면 알아서 회사를 나가세요.” “네, 대... 대표님.” 이변섭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생각할수록 심란했던 그는 테이블 위의 모든 물건을 다 쓸어버렸다. 깨진 컵을 수습하던 강수지에게 갑자기 묵직한 서류 뭉치가 날아왔다. 서류 뭉치는 그녀의 손에 적중하며 손바닥에 상처를 남겼다. “악......” 강수지의 목소리에 이변섭은 멈칫했다. 그제야 조금 전 강수지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변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쭈그리고 있는 강수지가 보였다. 강수지는 다친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 “커피 드리려고 왔어요.” 이변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강수지는 주머니 속에서 향낭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것도요......” “이건 또 뭐야.” 이변섭은 향낭을 집어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구려 죽겠네.” “제가 만든 향낭이에요. 스트레스 완화, 불면증에 좋은 한약재를 좀 넣어봤어요. 머리 맡에 놓아두고 자면 편히 잘 수 있을 거예요.” 강수지가 말했다. 이변섭은 향낭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쓸데없는 짓.” 이변섭은 강수지가 지난밤 불면증에 시달린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겼다. 강수지가 자기를 심란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이변섭은 왠지 불길했다. 강수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 아빠가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만든 거라 효과 있을 텐데.’ 강수지는 이변섭이 편히 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기분이 그나마 나아질 테니까. 최소한 이변섭 때문에 불안에 떨 사람도 적어질 것이다. “한번 해봐요.” 강수지는 용기 내어 말을 이어갔다. “수면에 도움이 되는......” “나가!” 좋은 의도로 챙겨줬지만 이변섭은 그 마음을 짓밟았다. 강수지가 사무실을 나간 뒤, 이변섭은 바닥 카펫에 떨어진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다쳤나 보네.’ 이변섭의 시선은 쓰레기통의 향낭으로 향했다. 잠시 뒤, 이변섭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그 여자, 누군지 알아냈어?”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 “망할! 서둘러!” 이변섭은 강경하게 지시했다. “어떤 대가라도 좋으니 그 여자를 찾아내야 해!” “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미 후보는 좁혀졌어요.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변섭은 전화를 끊었다. 이변섭은 반드시 그 여자를 하루빨리 찾아야 했다. 이대로 강수지를 옆에 두고 있다가는 언젠간 문제 생길 게 뻔했다. 이변섭은 강수지를 구미호처럼 남자를 홀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강수지는 손바닥을 움켜쥐고 인적 드문 구석으로 갔다. 그제야 그녀는 손바닥을 천천히 펼쳐보았다. 상처 부위는 이미 피가 멎었지만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연고를 발라야 했다. 아니면 염증이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수지는 연고를 살 돈이 없었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향낭 구매에 다 써버렸다. 그런데 이변섭은 그녀의 마음을 몰라 주는 것도 모자라 향낭을 무참히 버렸다. 강수지는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 봐야 했다. 그녀는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찾을 생각이었다. 이씨 그룹에서 한가하게 있는 것은 이변섭의 눈에 거슬릴 일을 만드는 것밖에 더 되지 않는다. 근처에서 일을 찾는다면 이변섭이 부르면 언제든 회사로 갈 수도 있다. 마침 맞은켠의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를 구하고 있었고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 주는 곳이었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주방 보조 구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분, 그 청소 아줌마 아니야?!” “어머, 귀하디귀한 이씨 그룹 사모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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