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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유희야.” 원수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는 수심으로 가득한 고모와 시선을 마주했다. “다들 내가 재벌가 며느리가 됐다고 남 부럽지 않게 사는 줄 알지만 지금의 삶을 위해 난 많은 걸 포기했어. 평생 아이는 낳지 않기로 그이랑 약속했거든.” ‘두 분 재혼한 지도 꽤 오래 되셨는데 왜 아이가 없나 했더니…… 그런 거였구나?’ “그러니까 유희야, 여기 남으면 안 되겠니? 어떻게든 여길 떠나려고 하는 거 알아. 이기적인 거 알지만…… 고모 곁에 있으면 안 될까? 너까지 떠나면 내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어.” 원수정의 애원 섞인 눈빛에 원유희도 난처할 따름이었다. “고모, 저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고 신걸이 마음이 풀리면 다시 돌아올게요. 네?” 아이만 없었다면 원유희도 기꺼이 고모 곁에 남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있는 한 김신걸이 고모를 괴롭힐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세 아이가 있다. ‘그러니까 고모 죄송해요…….’ “그래.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하겠니. 나 때문에 지금 네가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살고 있는데……” 원수정이 고개를 숙이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부정했다. “아니에요. 고모 잘못이 아니에요…….” ‘이 비극은 전부 김신걸 그 자식 때문이에요.’’ 원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던 원수정이 말했다. “그래. 고모 걱정은 하지 말고 멀리 떠나. 떠나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그 악마 같은 애한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고모는 만족이야.” “고마워요.” 식사를 마친 원수정이 떠나고 원유희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욕실 서랍, 새 휴대폰을 확인한 원유희가 미소를 지었다. 도망갈 때 사용할 휴대폰까지 챙겼지만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내가 아이들이랑 떠나면 엄마는 어쩌지? 여기서 혼자 외롭게 지내시게 두는 게 맞는 건가?’ 그녀의 어머니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원유희였기에 말년에라도 편하게 지내시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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