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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장

그녀는 진작 경험했었다. 그래서 이토록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리나는 나란히 맞잡고 있는 두 손을 빤히 쳐다보았고 성시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더니 손을 덥석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내가 손잡아주는 게 그렇게 좋아?” 강리나가 정신을 다잡고 말했다. “딴 여자랑 잡았던 손이라 완전 별로네요.” 말을 마친 그녀가 힘껏 내팽개치자 성시후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는 넌 딴 남자랑 손잡아본 적 없어?” “없어요.” 강리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이에 성시후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렇게 순진하다고? 그럼 이전에 학교 다닐 때 연애하면서 손도 못 잡게 했단 거야? 그 애들은 대체 뭘 보고 연애하는 건데?” 강리나는 그를 힐끔 째려봤다. 그녀는 아예 연애해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에 다들 풋풋한 연애를 하고 있을 때 강리나는 줄곧 짝사랑만 해왔었다. 애석하게도 성시후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그녀를 비웃었다. “우리 리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일 줄은 또 몰랐네. 손도 못 잡게 하는데 대시하는 남자들이 여전히 줄을 섰잖아.” 강리나는 핑크 코트를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놓고 그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제발 그만하시죠?” 말을 마친 그녀가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성시후는 그녀의 손목을 꼭 잡고 또다시 핑크 코트를 내밀었다. “한번 입어 봐.” 강리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끝내 코트를 챙겨서 피팅룸에 들어갔다. 그녀는 맨 먼저 핑크 코트를 입었는데 마침 피팅룸 안에도 거울이 있었다. 강리나는 거울을 쳐다보며 저도 몰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이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소녀 캐릭터도 나름 잘 소화하는 본인 모습에 흐뭇했나 보다. 사실 되새겨보면 2년 전에 아빠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어도 그녀는 성시후와 결혼할 일이 없다. 지금쯤 아마 여전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주님으로 지낼 것이다. 아쉽게도 이젠 더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될 자격이 없다. 강리나는 피팅룸 가림막을 젖히고 쭈뼛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 시각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성시후가 그녀를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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