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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주아린은 유원 별장으로 돌아가 이사를 준비하며 한 차례 정리를 시작했다. 주아린의 짐은 많지 않아 상자 몇 개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전부 허진우의 물건이었다. 사실 허진우의 짐도 많지는 않았다. 전부 헤아려 보니 대부분은 사무용품이었다. 혹시라도 중요한 물건을 빠트리기라도 했을까 몇 번이고 확인을 했고도 허진우에게 가져가라고 연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결된 통화 너머에서 들려온 건 허진우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서희였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주아린은 숨이 턱 멈췄다.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조금 뒤, 전화 너머에서 말했다. “누군지 알아요. 주아린 씨, 맞죠?” 질문에 부정은 하지 않은 주아린은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네, 허진우에게 할 얘기가 있는데요.” “지금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서요. 볼 일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주아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 그녀의 속내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큼 평온하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뿐이었다. 남서희의 대답이 들려왔다. “주아린 씨, 충고하는데 다른 속셈이 있는 거면, 그 생각 접는 게 좋을 거예요. 이혼 서류에 도장도 다 찍어놓고, 왜? 후회돼요?” “저 오빠랑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어요.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다고요. 그러는 주아린 씨는요? 뭐 아는 거 있어요? 결혼할 때 오빠가 당신을 집에 데려간 적은 있어요? 없죠. 왜 안 데려가는지는 알아요? 오빠네 집안에서 그쪽 인정 못 해서, 그래서 안 데려가는 거예요.” “당시에 내가 만나자는 걸 거절했고 그래서 홧김에 당신과 만난 거예요. 당신이야말로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요. 이 3년간의 실수는 이제 바로잡을 때가 됐죠. 그러니 부디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마시고 핑계 같은 것도 대지 마세요.” “….” 주아린은 확실히 허진우의 집안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시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가정사가 있는 탓에 결혼했을 때 부모 어느쪽도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허진우 쪽에는 스스로의 가정에 당당하지 못했던 주아린은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고 허진우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 흐지부지됐었다. 남서희는 전화를 끊었고 주아린도 다시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조금 마음을 가드듬은 그녀는 허진우의 운전 기사에게 연락을 해 와서 그의 짐을 처리하라고 했다. “여보세요, 진해철 씨. 저 주아린이에요. 언제 시간 나시면 와서 진우의 짐 가져가실래요?” “주아린 씨, 대표님께 여쭤봐야 합니다.” 난감해하는 진해철에 주아린은 이해한다는 듯 말해^다. “아니면 주소 주세요. 물건 보내드릴게요. 이러면 발품 안 파셔도 되겠네요.” “그게….” “안되나요?” “대표님 동의 없이 주소를 함부로 드릴 수는 없어서요. 양해부탁드립니다. 대표님의 사생활이라서요.” 진해철은 혹시라도 주아린에게 밉보일까 공손하고도 젠틀하게 말했다. 자신이 귀찮게 굴기라도 할까 봐 주소를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물어봐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해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말투는 여전히 공손했다. “주아린 씨, 대표님께서 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니 남기고 싶지 않으면 버려도 된다 하셨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을 들은 주아린은 심장이 저릿해졌다. “그렇게 말하던가요?” “네.” “그래요, 알겠어요. 실례했어요.” 빠르게 전화를 끊었지만 주아린은 여전히 속이 불편했다. 그녀는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감정이 없을 리가 없었다. 없었으면 한 침대에 누워 한 이불을 덮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진우의 물건을 처리한 주아린은 유원 별장을 떠났다. 그런 뒤 주아린은 결혼 전에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사를 마친 첫날, 허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잘못 보기라도 한 건가 싶었다. 왜 지금 전화가 온 건지,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끝내 전화를 받았고 아주 가벼운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나를 찾았다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허진우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에 주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 해결했어.” 허진우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에 진해철을 유원 별장으로 보냈어.” “….” “집 팔려고?” 소식도 참 빠르지. 주아린은 속일 생각은 없었다. 집 명의를 자신으로 돌렸으니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녀의 일이었다. 게다가 이 혼인에서 그녀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숨길 건 없었다. “응, 팔려고.” “어디서 지내는데?” “지낼 데 있어.” “유원 별장이 싫은 건가? 전에 그쪽 환경 좋다고 했었잖아.” 허진우는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주아린은 확실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만 흘러가는 말로 했던 것뿐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이젠 안 좋아해.” 그러다 잠시 멈춘 뒤 말했다. “전에 당신을 찾은 건 유원 별장의 물건들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물으려던 거였어. 이제 다 처리했으니까 앞으로는 별일 없으면 연락하지 마.” “마음대로 해.” 주아린의 착각인 건지, 허진우의 목소리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럴 리가, 착각이 분명했다. …… 전화는 허진우가 먼저 끊었다. 툭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동댕이친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위압감 가득한 분위기의 그는 흰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출처 알 수 없는 짜증이 일었다. 옆에 있던 진해철은 연신 눈꺼풀이 뛰었다. 부담감에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아침에 유원 별장에 갔다가 집이 중개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곧바로 허진우에게 전했고 허진우는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듯했다. 왜 기분이 나쁜지를 진해철은 감히 더 묻지 못했다. 담배에 불을 붙인 허진우는 느릿하게 담배를 피며 미간을 꾹 눌렀다. 흩뿌려진 연기에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가려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표님, 그 집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제가 주아린 씨를 찾아가서 얘기해 볼까요?” 허진우는 재를 툭 털었다. “됐어. 이미 명의를 넘겼으니 어떻게 처리하든 그 사람 마음이지.” 진해철은 더 말을 얹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허진우는 짜증 섞인 표정을 거두었지만 별다른 감정 변화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요 며칠 어디서 지내는지 알아?” “예전에 지내던 집으로 가신듯합니다.” 진해철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하영 씨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러곤 허진우가 조하영이 누군지 모를까 봐 한 마디 덧붙였다. “조하영 씨는 주아린 씨의 친구분이십니다.” 그 말에 그를 쳐다보는 허진우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불필요한 말에 눈치를 주는 듯했다. 진해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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