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장

진형우는 테라스에서 나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잠이 든 나를 발견했다. 방안의 노란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그의 시선도 내 얼굴에 고정되었다. 느낄 수 있지만 깨어날 수 없었다. 한참 지난 후, 나지막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은아...” 은아?! 지금 나를 부르는 거라고? 그렇다. 나를 부르는 것이다. 강씨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나은이 아닌 은아라고 불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나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오빠, 내 이름은 은아야...” 똥머리를 한 어린 소녀가 인형 같은 얼굴을 하고 남자아이를 달콤하게 부르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도도한 소년은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여자아이가 되었고 진형우는 그 남자아이가 되었다. 나는 그 남자아이의 등에 엎드려 있었다. “오빠, 오빠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 “오빠, 목 뒤에 검은 점이 하나 자랐어. 내가 빼줄게.” “은아, 꼬집지 마. 아파.” “은아, 오빠 피곤한데 우리 안 뛰면 안 될까?” ... “엄마, 나 오빠 좋아해, 오빠에게 시집갈래요...” “하하...” “엄마 아빠 웃지 마요.” “은아, 너는 오빠와 결혼할 수 없어. 너에게는 약혼자가 있어...” “그 사람에게 시집 안 갈 거야, 나쁜 놈, 나쁜 놈!” 나는 꿈에서 벌떡 깨어났다. 호흡도 좀 가빠졌다. 너무 뜻밖이다. 꿈에 어떻게 진형우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아이로 말이다. 두 살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았다. 침대에 누운 채 한 30분이나 있었다. 하지만 발이 땅에 닿자마자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어젯밤의 일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즉시 고개를 돌려 잠자던 침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형우는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역시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니 소파에서 자는 진형우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군인이라 소파에서 자도 반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자는 게 피곤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은 너무 정직하다. 흐트러뜨리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