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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구원사랑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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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너 솔직히 말해봐. 한나은이랑 잤어?”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안으로 들여가려던 내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강지훈이 얇은 입술을 벌리며 말하는 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였다. “나한테 들이대긴 했지만, 난 걔한테 그런 마음 없어.” “강지훈, 그만해라. 한나은은 우리 무리에서 소문난 미인이야. 얼마나 많은 남자가 한나은을 좋아하는데.” 이 말을 한 사람은 강지훈의 친구이자 나와 강지훈 10년 동안의 감정을 지켜봐 온 서현우였다. “한나은이랑 너무 익숙하잖아. 그 느낌 알아?” 강지훈은 이마를 찌푸렸다. 내가 14살 때, 강씨 가문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지훈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모든 사람이 나에게 그랬었다. 난 나중에 강지훈이랑 결혼하게 될 거라고. 그로부터 우리는 10년 동안 함께 생활했다. “하긴, 같은 회사를 다니니까, 하루 종일 보겠네. 아침에는 회사에서, 저녁에는 집에서. 상대방이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는 것도 다 알겠어.” 서현우가 장난치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찼다. “매일 붙어있는다고 감정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 남녀 사이에 그래도 신비로운 느낌이 있어야 하잖아. 잡고 싶은데 안 잡히는 그런 느낌. 그래야 짜릿하지.” 강지훈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서현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결혼할 거야?” 서현우의 질문에 나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강지훈의 부모가 우리더러 결혼하라고 했을 때, 강지훈은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서현우는 내가 궁금해하던 걸 물은 셈이었다. 강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서현우가 웃었다. “결혼하기 싫어?” “그건 아니야.” “결혼은 하고 싶은데 별로 내키지 않은 모양이네. 그렇지?” 서현우는 강지훈이랑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기에, 서로의 생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현우야,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어?” 강지훈이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뭐?” “가지긴 뭐하고 버리긴 아깝다는 거.” 강지훈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10년이나 사랑했던 그 얼굴이 담배 연기 속에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순간 움찔했다. 그렇구나, 난 이미 강지훈한테 그런 존재가 되었구나. “그럼 결혼할 거야, 말 거야?” 서현우가 계속 캐물었다. 강지훈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 거야? 설마 한나은한테 마음이라도 있어? 너한테 줄까?” 강지훈은 사람인 나를 물건 취급하면서 다른 남자에게 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10년 키워도 정이 생겨서 함부로 남한테 주겠다는 소리를 못 할 텐데. 보아하니 난 강지훈에게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지훈은 이 10년 동안, 나의 빛이자, 내 전부였다. 강지훈의 말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 목구멍에서 피비린내와 씁쓸한 무언가가 치밀어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손에 쥐고 있는 호적 등본을 보며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 서현우가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친구의 아내를 뺏으면 안 되지. 나 서현우,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야.” 강지훈은 담배를 재떨이에 문지르며 불을 껐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꺼져. 오자마자 사람 속 터지게 하네.” “네 속을 터지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나은이겠지. 정말 한나은랑 결혼할 마음 없으면 헤어져. 그래야 나은이도 다른 남자 찾을 거 아니야.” 서현우는 이렇게 말하며 소파에 걸쳐놓은 코트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문이 열리자, 서현우는 밖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코끝을 한 번 만졌다. 서현우는 내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훈이 찾으러 왔지? 안에 있어.” 나는 호적 등본을 잡고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현우는 내 손에 쥐어진 물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움찔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 잘해.” 그리고 나의 어깨를 몇 번 토닥거리더니, 가버렸다. 손에 쥐어진 얇은 호적 등본은 불에 달궈진 쇳덩어리처럼 뜨겁고 무겁기만 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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