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화

한배에서 난 혈육인 세자 이휘와, 곧 부마가 될 나의 정혼자는 내가 권세를 앞세워 그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짓밟았다고 모함했다. 복수를 결심한 그들은 가례를 치른 첫날 밤부터 내가 정조를 잃었다고 떠들었고, 이휘는 그 말만 듣고 나를 극형에 처하라 명하였다. 나는 미쳐버린 사람처럼 웃으며, 그들과 함께 죽을 작정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은 3년 전으로 돌아갔다. 민연아가 비녀 끝을 자기 얼굴에 겨누며 음흉하게 웃었다. “제 얼굴에 난 흠집을 보시면 세자 저하께서 뭐라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 공주마마께 무릎 꿇고 사죄하라 하시겠지요?” 나는 냉소를 흘리며 그녀 손에서 비녀를 빼앗아, 그 얼굴에 수십 번이나 깊게 상처를 냈다. “그깟 핏자국 하나로는 고변하기엔 부족하지 않겠느냐? 이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야 세자 저하 귀에 들어갈 만하다는 말이다!” ... 전생에서 나는 가례를 치른 바로 그날 죽었다. 합방 자리에서 내 지아비 권경현은 차갑게 나를 한번 훑어본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공주마마는 가례 첫날밤 초야에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조가 이미 더럽혀졌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문란한 여인... 공주마마를 제가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몰려든 이들이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저런 요부는 극형을 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공주마마이신데...” “왕족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백성과 똑같은 법이다!” 마지막 말은 세자 이휘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눈물을 흘리는 민연아를 보는 순간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촛대를 엎어 방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바로 3년 전이었다. 민연아는 내 비녀를 들고 자기 얼굴에 작은 상처를 내며 웃었다. “제 얼굴에 난 흠집을 보시면 세자 저하께서 뭐라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 공주마마께 무릎 꿇고 사죄하라 하시겠지요?” 선명한 기억이 밀려오자, 나는 다시 살아났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연아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봉황잠을... 마마께서 제게 양보해 주신다면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자리를 조금은 편하게 마련해 드릴 수도 있을 텐데요?” 또다시 마주한 이 장면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냉소를 흘리며 그녀 손에서 비녀를 빼앗아, 그 얼굴에 수십 번이나 깊게 상처를 냈다. “그깟 핏자국 하나로는 고변하기엔 부족하지 않겠느냐? 이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야 세자 저하 귀에 들어갈 만하다는 말이다!” 나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피 묻은 비녀를 바닥에 던졌다. 민연아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밖에 누구 없느냐! 어서, 어의를 부르라!” 나는 비아냥거리며 답했다. “어의는 무슨? 그 얼굴로 가야 내가 권세를 앞세워 너를 괴롭혔다고 제대로 모함할 수 있지 않겠느냐?” 여기는 내 처소였고 주위는 모두 내 사람들이었다. 나는 문밖으로 나서며 뒤 돌아 문을 잠가 버렸다. 민연아가 문틈을 긁으며 분노로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위협했다. “공주마마!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사옵니까!” 나는 가볍게 비웃었다. “내 처소를 그리 부러워하더니, 여기서 썩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전생의 나는 공주로서 대범하고 단아했으며, 누구에게든 너그러움을 잃지 않았다.세자 오라버니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라던 민연아에게조차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나를 모함하며, 내가 권세를 앞세워 약자를 괴롭힌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아무리 해명해도 오라버니는 끝내 내 말을 믿지 않았고, 어린 시절부터 곁을 지켜준 벗, 권경현마저 그녀의 편을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경회루에 와 있었다.권경현은 옷깃을 매만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고, 내가 다가서자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어찌 공주마마께서...” 나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던 연아 아씨가 아니라 실망이라도 하셨는가?” 권경현은 눈빛을 피하며 이내 실망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주마마, 민 낭자 말씀입니까? 연아 아씨는 세자 저하의 은인이십니다. 공주마마께서 오해를 하신 것이 아니신지요?” 전생에서도 내가 민연아와의 사이를 의심할 때마다 늘 했던 말이었다. 결국엔 나를 시기 많고 질투심에 눈이 먼 여자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나는 죽기 직전에야 민연아가 이휘뿐만 아니라 권경현까지 구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아이러니하게도 세자와 권 대감 댁 도련님이 동시에 위험에 빠질 때 우연히도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권경현은 나를 이용해 권력을 잡아 가문의 적장자인 형을 누르려 했기에, 권 대감 댁의 장자가 되던 날, 즉 나와 가례를 올리고 난 첫날밤에야 나를 모함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차갑게 비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외간 남자가 후궁에 침입하였다!” 곧 수많은 궁녀와 내관들이 몰려와 권경현을 제압했다. 권경현은 얼어붙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오해이옵니다. 소인은 권 대감 댁의 둘째이며 공주마마께서 부르셔서 온 것입니다.” 가례 첫날 나를 모함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무표정하게 그에게 다가가 냉정하게 뺨을 후려쳤다. 그는 당황스러운 듯 뺨을 감싸며 어두운 눈빛으로 본색을 드러낼까 싶다가도 이내 애써 미소 지었다. “마마께서 불쾌하신 일이 있으셨다면 소인에게 화풀이하셔도 되옵니다. 허나 저는 공주마마의 정혼자 아니옵니까... 부마가 될 저를 이리 무례하게 대하는 건 곤란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혼인을 없던 일로 하지요.” “무엇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권경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공주마마와 소신은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이 아니었사옵니까?” “감이 공주인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말하는군요... 오만무례합니다!” 나는 담담히 명했다. “권 대감 댁 서자 권경현은 허가 없이 후궁에 침입하여 본 공주를 능멸하였으니, 장 삼십 대를 쳐라.” 권경현은 더욱 놀랐고 나는 그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약간의 복수를 마친 나는 홀가분히 돌아섰다. 저녁이 되자 세자 오라버니가 동궁으로 나를 불렀다. 민연아는 면사포를 쓴 채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 있었고, 권경현은 꼿꼿이 서서 앉지도 못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세자를 향해 미소 지었다. “오라버니,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진귀한 보석이라도 조공 받아 하나뿐인 이 동생에게 주시려는 겁니까?” 세자 이휘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 무릎 꿇어라.” 나는 웃음을 거두었다. “무슨 이유로 공주인 제가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 “아무 이유 없이 권 대감 댁 도련님을 매질하고, 내 생명의 은인을 능멸하여 흉측한 상처를 입혔다. 그래도 이유가 없다고 하겠느냐?” 이휘는 나를 위협하듯 소리 질렀지만, 나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이 나라의 공주입니다. 저 두 사람의 신분이 공주인 나보다 높다는 말입니까? 내가 저들을 짓밟는 데 이유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나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말에, 이휘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침묵하다가 이내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구나! 연아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권경현을 벌한 죄로 뺨 서른 대를 명하노라.” 궁녀들이 나를 붙잡으려 하자 나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들었다. “감히 다가오는 자는 이 자리에서 즉시 베어버릴 것이다!” 궁녀들이 머뭇거리자 나는 조롱 섞인 투로 이휘에게 말했다. 더는 세자랍시고 존대할 이유도 없었다. “오라버니도 참, 민연아를 좋아하면 동궁으로 거두면 될 일 아니야? 혼인도 없이 음탕한 짓이라니, 예의도 법도도 모르는 건 세자 너야!” 민연아는 이휘의 품에서 벗어나 울먹이며 말했다. “공주마마께서 저를 미워하시는 건 소녀가 참겠습니다. 허나 어찌 세자 저하를 모함하시옵니까?” 권경현도 나를 책망했다. “공주마마, 어찌하여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마마의 행동은 실망스럽기에 그지없습니다.” 나는 비웃으며 대꾸했다. “누가 네깟것들이 궁궐 안에서 함부로 지껄이는 것을 허락했더냐?” 이휘는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연우야, 공주마마로서 예법도 모르느냐!”
이전 챕터
1/100다음 챕터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