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서지수는 차 키를 내려놓고 다가가서 인사했다.
“아버님, 어머님.”
“누가 네 아버지고 어머니야.”
김진희는 얼굴에 노골적인 날카로움을 띤 채 대꾸했다. 단정하고 우아한 원피스를 입었어도 그녀 특유의 날 선 기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서지수는 그 말에 개의치 않았다.
결혼 후 줄곧 진성규와 김진희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울러 결혼 생활 동안 이들과 마주한 적도 많지 않았다.
하나는 진수혁이 그녀가 시부모 밑에서 무시당하는 걸 원치 않았고, 다른 하나는 진수혁 본인이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명절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수혁이는 어디 있어?”
근엄한 표정의 진성규가 물었다.
서지수는 마음속에서 반항심 같은 게 생겨서인지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몰라요.”
“너희가 지금 이혼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진성규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주변으로 강한 압박감이 번졌다.
서지수는 무심결에 2층 계단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진성규가 곧바로 덧붙였다.
“하늘이는 집에 없어. 내 사람이 데리고 나갔거든. 한 시간 뒤에 돌아올 거다.”
마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지수의 휴대폰에 진하늘에게서 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확인하려던 찰나 김진희가 성가시다는 듯 끼어들었다.
“괜히 돌려 말할 거 없어. 오늘 우리가 온 건 딱 하나야. 너희가 이혼하게 된다면 애는 누구한테 가는 거냐?”
서지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소채윤이 걱정했던 그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수혁이요.”
쓸데없이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아, 서지수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진수혁이 부모와 사이가 안 좋으니 미리 말 안 했을 가능성도 있고, 혹시 진하늘이 자신과 함께 지낸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이들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자칫 진하늘과의 만남 자체를 막아버리거나, 더 심각한 방식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럼 이건 뭐냐.”
진성규가 어딘가에서 받은 이혼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 보니 얼마 전 법원에 제출했던 그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게 어떻게...?’
“네가 어떤 수를 써서 하늘이 양육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포기해.”
진성규의 태도는 강압적이었다.
“하늘이는 우리 집안 아이야. 너 같은 남이 데리고 갈 수 없어.”
서지수는 그를 똑바로 보며 되물었다.
“엄마인 제가 남이면 두 분은 뭔데요?”
“서지수, 나한테 말할 인내심이 있을 때 포기해. 성가시게 굴지 말고.”
진성규의 목소리가 한층 어두워지면서 한계에 가까운 짜증이 서렸다.
서지수는 그들이 이런 식의 태도로 자신을 깔보는 게 정말 불편했다.
“하늘이는 제 아이예요. 제가 키우는 게 당연한 거죠.”
“네가 일도 안 하면서 뭐로 애를 키운다는 거야?”
김진희는 서지수의 약점을 예리하게 찔렀다. 대놓고 깔보는 말투였다.
“지금까지는 집안일을 해도 월급으로 환산하는 사람이 없었고, 월급을 넣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앞으로 일자리 찾으면 월급도 받을 거니 애 키울 돈도 벌 수 있겠죠.”
“그게 뭐.”
김진희의 눈에는 여전히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서지수는 고개를 차분하게 들어 올렸다.
김진희는 여전히 매섭게 말했다.
“네가 벌어봐야 우리 하늘이가 입는 옷 한 벌이나 사겠니?”
한동안 침묵하던 진성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거실을 짓눌렀다.
“양육권은 우리가 가져간다.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금전적으로 보상해 주마.”
이 장면을 보고서 서지수는 다시금 확신했다.
‘하늘이를 이런 사람들 손에 맡길 순 없어.’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는 그들이 받아들일 리 없는 요구를 던졌다.
“그럼 진수혁 명의로 된 제이 그룹 지분 전부 제게 주세요.”
“꿈도 크네!”
김진희는 그녀가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고 확신한 듯 소리쳤다.
서지수는 한결같이 담담했다.
“먼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꺼내신 분들이 누군데요.”
그 말에 김진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진성규 또한 어두운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