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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뭐 그렇다고요.” 서다은은 가볍게 도발한 후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강하나는 그녀가 나간 후 갑자기 심장에 극심한 고통이 일어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세면대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서야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녀는 그간 박지헌을 믿었던 스스로가 무척이나 바보처럼 느껴졌다. 증정용을 선물로 받고도 기뻐하며 그 드레스를 애지중지했던 스스로가 정말 너무나도 바보같이 보였다. “어머, 사모님? 감기에 걸리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직도 몸이 안 좋으신 건가요?” 그때 화장실 안으로 여자 몇 명이 들어왔다. “그보다 저, 기사 보고 아침부터 또 마음이 사르르 녹았잖아요. 사모님은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요. 세상에 감기 좀 걸렸다고 그 바쁜 의사들을 아침 댓바람부터 집에 불러들이는 남편이 또 어디 있어요? 우리 집 양반은 아마 내가 눈앞에서 쓰러져도 시큰둥할걸요?” “그러니까요. 요즘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대표님과 사모님 얘기를 듣는 게 더 재밌다니까요?” 여자들은 처음에는 강하나를 걱정하는 척하더니 금방 박지헌 찬양으로 주제를 바꿨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한바탕 부러움만 표하다가 다시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강하나는 여자들이 떠난 후 거울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박지헌의 곁을 떠나기로 이미 결정했는데도 그녀는 아까 서다은의 말에 저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강하나는 화장실에서 잠시 마음을 다잡은 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기다리겠다고 했던 박지헌의 모습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파티장으로 혼자 걸어가려는데 코너를 막 지날 때쯤 우연히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만해.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박지헌이 서다은을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서다은은 굴하지 않고 몸을 밀착시키며 열정적으로 입을 부딪쳤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박지헌이었지만 결국 서서히 두 손을 들어 그녀의 허리에 감싸며 같이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강하나는 그 모습에 아무 말 없이 뒤로 돌아 파티장이 아닌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버렸다. 별장 앞에 도착하니 박지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야, 어디 있어? 나 지금 계속 자기 찾고 있는데 안 보이네?” “나 지금 집이야.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나왔어.” 강하나의 쌀쌀맞은 말에 박지헌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몸이 안 좋다고? 기다려! 나도 바로 갈게!” 이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꼭 금방이라도 내 앞에 나타날 것처럼 얘기하네? 가증스럽게.’ 강하나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이번에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또 한 통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사이트에 끄리티앙 브랜드 옷 올린 분 맞죠? 혹시 벌써 팔렸나요? 올리신 거 전부 다 구매하고 싶은데.” 전화를 건 사람은 강하나가 중고 사이트에 올린 옷의 구매를 원하는 구매자였다. “아니요. 있어요.” “다행이다! 그럼 저 20분쯤 뒤에 그쪽에 도착할 것 같은데 그때 거래 가능할까요?” “그럼요. 20분 뒤에 봐요.” 강하나가 전화를 끊자마자 마침 유 집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강하나를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사모님? 파티에 가신 거 아니셨어요? 그리고 왜 혼자예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왔어요. 참, 저 좀 잠깐 도와주실래요? 물건을 아래로 옮겨야 해서요.” 강하나는 유 집사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유 집사는 2층 바닥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가방들을 보며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전에 입었던 옷들이에요. 이제는 손이 잘 가지 않아서 버릴까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낭비 같아서 중고 사이트에 팔려고 내놨어요.” “아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거 다 아래로 옮기면 될까요?” “네, 부탁할게요.” 유 집사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며 가방들을 별장 밖으로 옮겼다. 물건이 많은 탓에 그는 3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밖으로 다 옮기고 나니 마침 구매자가 도착했고 그렇게 가방들은 구매자의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강하나는 거래를 마친 후 저녁 식사는 패스하고 씻은 후 바로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 박지헌의 말이 생각나 시계를 보니 그와 통화한 뒤로 벌써 2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역시 금방 오겠다는 그 말도 거짓말이었다. 강하나는 자조하듯 한번 웃더니 이내 자려는 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때 휴대폰 불빛이 켜지고 서다은이 보낸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그녀가 보낸 건 문자가 아닌 박지헌과 서다은이 다정하게 러브샷을 주고받는 영상이었다. 분명히 손이 떨릴 만한 영상인데 이상하게도 강하나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이미 입술까지 열렬히 부딪히는 모습까지 봤는데 새삼 러브샷 한 것이 대단하게 느껴질 이유도 없었다. 강하나는 이번에야말로 잘 거라며 휴대폰을 멀리 치워버렸다. 하지만 눈을 감은지 불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왔고 이에 인내심이 바닥난 강하나는 당연히 서다은인 줄 알고 전화를 받자마자 화를 냈다. “이봐요. 정도껏 하죠?”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전화를 건 사람은 박지헌이었다. “자기야, 나야. 누군 줄 알고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아... 그냥 스팸이었어.” “그렇구나. 난 또 어느 겁 없는 남자 놈이 우리 자기 스토킹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박지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누가 날 스토킹하겠어? 그리고 날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건 지헌 씨밖에 없어.” 강하나는 그의 반응을 보려는 듯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 “그래,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참, 아까는 미안. 빨리 가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하도 붙잡는 바람에 벗어나지 못했어. 늦지 않게 돌아갈 테니까 먼저 자고 있어. 사랑해.” 전화가 끊기자마자 강하나는 코웃음을 쳤다. “친구들이 널 붙잡아? 서다은이 아니고?” 강하나는 또다시 누가 잠을 방해할까 봐 아예 무음으로 설정해놓고 누웠다. 다음 날 아침. 강하나는 간밤 오랜만에 아주 푹 잤다. 푹 자서 그런지 머리도 맑고 몸도 엄청 가벼웠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움직이다 그제야 박지헌이 외박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걱정이 되거나 화가 나야 하는데 강하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오랜만에 음악까지 틀어 놓으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간단히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사하는데 시선이 느껴져 앞을 바라보니 도우미와 마침 눈이 마주쳤다. “저한테 뭐 할 말 있으세요?” “오늘 사모님 텐션이 평소보다 높은 걸 보니 대표님께서 또 서프라이즈를 해줬구나 싶어서요. 후훗.” 도우미의 말에 강하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주변인들은 늘 이렇게 그녀의 기분을 박지헌과 연관 지었다. “짠!” 그때 등 뒤에서 박지헌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나타나더니 활짝 웃으며 강하나의 품에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러고는 쪽 소리가 날 만큼 찐하게 뽀뽀하더니 이내 계약서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자기야, 이게 뭐게?” 강하나가 계약서에 적힌 글씨를 소리 내 읽었다. “하나 사랑 재단?” ‘박지헌이 내 이름으로 된 재단을 설립했다고?’ 강하나의 벙찐 얼굴에 박지헌은 그녀가 감동 받았다고 생각해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며칠 전에 자기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잖아. 이게 바로 그 선물이야!” 강하나는 그제야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쩐지 오늘따라 사모님의 기분이 좋아 보이시더라니, 아침부터 대표님의 선물을 기다리셨던 거군요?” 도우미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도 나한테 선물 준다고 하지 않았어?” 박지헌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침대 바로 옆에 뒀어.” 박지헌은 강하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큼성큼 위층으로 올라갔다. 선물 받을 생각에 잔뜩 들뜬 모양이었다. 강하나는 그를 보낸 후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죽을 먹기 시작했다. 몇 분 후, 박지헌이 선물 상자를 손에 들고 내려왔다. “자기야, 이 안에 든 거 뭐야? 나 기대돼서 미치겠어. 지금 바로 열어도 되지?” “잠깐.” 강하나가 선물 상자를 개봉하려는 박지헌의 행동을 제지했다. “왜? 지금 보면 안 되는 거야?” 박지헌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응, 안 돼. 이건 절에서 얻은 귀한 거라 3일 뒤에 개봉해야 해. 그래야 행운이 깃든댔어.” 그녀의 말에 박지헌은 얼른 상자를 고이 모셔두며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 “고마워. 자기가 준비한 게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준 거니까 분명히 엄청 귀한 선물일 게 분명할 거야. 그렇지?” 강하나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3일 뒤에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을 보고도 그렇게 좋아하길 바랄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박지헌은 강하나에게 함께 드라이브 가자며 은근히 스킨십을 해왔다. 이에 강하나가 뭐라 대답하려는데 박지헌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인데?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라고. 나도 좀 우리 와이프랑 즐거운 시간 보내자!” 박지헌이 짜증 가득 섞인 말투로 전화기너머 상대에게 말했다. “뭐? 하... 알았어. 지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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