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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안타깝게도 강수 아저씨의 그 다섯 살 난 딸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아빠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인정도 하지 않으려 하죠.” 그 말이 들리자 송진하는 송강수의 안색이 돌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음울해졌던 표정은 이내 다시 되돌아왔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인데 다 함께한 세월이 오랜 탓에 송진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마자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방금 전까진 추나연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조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빠…. 설마… 진짜로 사생아가 있는 거예요?” 송강수의 얼굴에 순식간에 고통이 차올랐다. 입술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생아는 무슨, 헛소리하지 마.” 그런 송강수의 모습에서 송진하는 모를 수가 없었다. 가슴 가득 들어차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오롯이 실망뿐이었다. “아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엄마 몸이 안 좋은데,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날 수가 있어요.” “어떤 여자예요? 회사에 그 여비서예요? 제가 전부터 그 사람 의도가 불순하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랑 만나는 거 아니죠?” 하지만 송강수는 아무 말 없이 온 정신을 송진하의 방송에 집중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이럴 수는 없어. 그걸 아는 사람이 있다니?” 송진하는 분노에 차 비아냥댔다. “다른 사람이 모르길 바란다면 하지를 말았어야죠! 아빠가 저지른 짓인가, 당연히 알겠죠!” “진하야, 이 사람 추씨 가문에서 찾아온 그 추나연 맞지?” “걔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송진하는 지금 다른 사람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 아직 저한테 그 딸은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안 해줬어요.” 송강수는 이미 감정을 갈무리한 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생아 같은 건 없어. 내가 추나연을 만나고 난 뒤에 모든 걸 다 가르쳐줄게.” “그러니까 이 일은 네 엄마한텐 비밀이야!” “….” 송강수의 얼굴을 본 송진하는 별안간 추나연이 큰 화를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진짜로 모함인가?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가짜 같지가 않았다! “아빠, 아빠… 지금 바로 가시게요?” …… 차에 탄 송진하는 잠깐 짬을 내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송진하:[추나연 끝났어. 아빠가 직접 추씨 가문으로 찾아가는 중이야.] 추성화:[오늘 추나연이 방송에서 한 얘기 때문에? 진하야,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나연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노여워마시라고 해줘.] 송진하:[추성화, 넌 어렸을 때부터 그게 문제야. 그 한없이 착한 성격 좀 고쳐봐. 난 너랑 달라. 넌 그 추나연을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참아.] 송진하:[우리 아빠도 못 참아. 이번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양요진:[@송진하, 진짜로? 네 아빠같이 성격 좋으신 분도 화가 난 거야?] 안수영:[그 추나연은 제대로 혼날 때 됐어. 오늘도 감히 성화의 옷을 빼앗은 걸로도 모자라 강수 아저씨에 관한 헛소문도 퍼트리고 말이야. 내일이면 아주 각 가문의 비밀들을 다 꺼내서 얘기하겠어.] 추성화는 송진하의 말 때문에 시끌벅적해진 단톡방을 쳐다봤다. 대부분은 추나연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부모님의 방문을 노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나연의 방문 앞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자 추호준과 송선아 두 사람이 보였고,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오늘 파트에서 있었던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친딸에게 죄책감을 느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보상을 해줄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 추나연은 또다시 사고를 쳤다. 추호준은 자식과 소통하는 것이 낯설었다. 특히 제대로 교류를 해본 적 없는 딸과는 더더욱 어려웠다. 엄하게 대할 수도, 그렇다고 가볍게 대할 수도 없었다. “강수 아저씨가 왔다. 무엇 때문인지 아느냐?” “압니다!” 추호준의 두 눈에 분노와 한숨이 차올랐다. “알면서 왜 허튼소리를 해. 너… 너 그 방송 그만해. 집에서 주는 돈으로 부족할 것 같니?” “이건 제 일이에요.” 추나연의 태도는 차가웠다. 추성화가 뒤에서 작게 말렸다. “나연아, 네가 하는 방송은… 어디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진짜로 일이 하고 싶고 뜨고 싶다면 연예계에 갈 수도 있잖아.” “둘째 오빠가 연예계에도 인맥이 있으니까,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싶으면 내가 둘째 오빠한테 얘기할게. 분명 도와줄 거야.” 추나연은 담담하게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그건 내 오빠야.” 추성화의 표정에 서러움이 가득했다. 송선아는 그녀를 감싸며 추나연에게 조금 불쾌한 티를 냈다. “나연아, 성화에게 그렇게 가시 돋게 굴지 않을 수는 없니? 성화도… 엄마아빠의 딸이야.” 그녀는 말 잘 듣고 효심이 지극한 성화와는 달리 추나연은 철이 없다고 생각했다. 추호준은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추나연에 한숨을 내쉬었다. “강수 아저씨가 곧 도착할 거야. 밑에 내려와서 기다려.” “이따가 오면 자발적으로 아저씨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해. 알겠어?” “….” 추나연은 대답없이 방으로 돌아가 겉옷 하나를 걸친 뒤 그들을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다. 아래층에 도착하자 때마침 송씨 가문의 차가 도착했다. 잇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송강수 부자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송진하는 추나연을 보자마자 펄쩍 뛰며 손가락질했다. “추나연,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진하야!” 송강수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호준 아저씨도 있는데, 버릇없이.” 추호준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강수야, 왜 진하를 혼내고 그래? 따지고 보면 다 나연이 잘못이지. 나연아, 얼른 사과하지 않고 뭐하냐.” 소파에 앉은 추나연은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저한테 볼일 있으시다고요?” 송강수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방송에서 했던 말, 누가 알려준 겁니까?” “네.” “얼마를 줬죠?” 이건 송강수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었다. 재계 라이벌이 그의 상처를 찔러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안 줬습니다.” 송강수는 믿지 않았다. “나연아,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야. 오늘 일은 이대로 넘어가마. 돈이 부족하거든 이 아저씨에게 얼마든지 얘기해. 하지만 어떤 돈은 함부로 받아서는 안 돼!” “그랬다간 아무리 나와 네 아버지가 친하다고 해도, 화를 낼 거야.” 재계에 오랫동안 발을 담그고 있는 송강수는 자신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보통 아랫사람들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 죄다 겁을 먹었다. 송진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추나연은 아무런 영향도 없는 듯 느긋하게 차를 마실 뿐이었다. 송강수는 그 말을 마친 뒤 그대로 떠나려고 했다. 추호준도 그 뒤를 따라다니며 사과를 했다. 막 문 앞으로 걸어가는데 추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에게 생일 선물 샀냐고 물어보는데요?”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던 송강수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휙 돌려 추나연을 쳐다봤다. 추나연의 안색은 담담했다. “그 보석 티아라는 싫고 오채화 무늬가 좋대요. 제대로 사셨어요?” 방금 전까지 평온하던 송강수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생일 티아라는 그와 딸의 비밀이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와 딸만 아는, 아내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너… 정말로 걔가 날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어?” “네.” “그 애는 이미…. 맞니?” 담담하던 추나연의 표정이 잠시 굳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송강수는 양손을 꽉 말아쥐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저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겨우… 겨우 다섯 살이야!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어, 다 내 탓이야. 내가 일 때문에 그 애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어.” 말을 이어가던 송강수의 허리가 굽어지더니 이내 고통에 찬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송진하는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멍한 얼굴의 추씨 가문 사람들을 보니 평온한 얼굴의 추나연 외에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아빠!” 송강수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송진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송강수는 눈물을 닦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연아, 나를 도와 아이를 찾아줄 수 있겠니?” 막 입을 열려던 추나연은 별안간 송강수와 송진하의 얼굴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이마에 검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강수 아저씨, 아내분 지금 집에 안 계신가요?” 송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몸이 안 좋아서 당분간 입원하고 있어. 이제 막 병원에 들러서 보고 오는 길이야.”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세요. 어쩌면 그분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 송강수와 송진하는 동시에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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