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강성.
추씨 가문.
추나연은 담요를 몸에 두른 채 멍하니 풀장 옆에 앉아 있었다. 순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예쁜 얼굴엔 아무런 혈색도 없었고 온몸에선 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수선계에서 인간계를 해치던 귀왕을 참살하고 수행이 대폭 상승했던 것 같은데 눈 깜짝하는 사이 그녀는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나연아, 어떻게 언니를 물속으로 밀 수가 있어? 네 언니잖아! 얼른 사과해!”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똑같이 물에 젖은 여자아이를 안은 채 그녀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 여자를 보자 잊고 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선명해졌다.
그 사람은 바로 그녀의 전생의 어머니, 송선아였다.
전생의 그녀는 평생을 처참하게 보냈다.
어린 시절은 고아원에서 지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양안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던 탓에 괴짜 취급을 당해 그 누구도 그녀와 놀아주지 않았었다.
그러다 20살이 되었을 땐 대학도 갈 수 없었던 탓에 하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열심히 일만 했었다. 하루에 일을 세 탕이나 뛰며 언젠가는 돈을 모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거듭나려고 했었다.
그러다 22살 때, 추씨 가문에서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어렸을 때에 바뀌었고, 사실은 강성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가, 추씨 가문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단 한 번도 가족애라는 걸 느껴본 적 없던 그녀는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져 드디어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씨 가문에서의 삶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추씨 가문에는 가짜 아이, 추성화도 있었다.
추성화는 20 몇 년간 엘리트 교육을 받아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우아함이 깃들어 있어 위로는 부모님부터 아래로는 추씨 가문의 고용인들까지 모두가 추성화를 좋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두 사람을 두고 비교했으며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추성화보다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 그녀의 멘탈은 점점 더 무너지고 바뀌었다. 기대 가득했던 처음에서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던 그녀에게는 끝내 분노만 가득 남았었다.
그녀가 발악을 하면 할수록 쪽팔림만 당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환영 파티에서 그녀는 추성화의 드레스를 빼앗아 입었고 어울리지도 않는 차림에 재벌 2세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샀다.
그것에 자극을 받은 그녀는 곧바로 추성화와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함께 풀장으로 빠졌다.
그녀의 전생 마지막 광경은 바로, 물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추성화를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데 자신은 점점 가라앉는 광경이었다.
방금 전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여전히 풀장 안에 있었고 몇 초 뒤에야 추씨 가문의 큰아들, 추기한이 그녀를 구해줬다.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전생에 억눌렀던 감정들도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추나연은 담요로 몸을 두른 채 일어났다.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하마터면 언니를 죽일 뻔 해놓고, 아직도 사과하기 싫어? 너 지금 이게 무슨 태도야?”
송선아는 실망감과 분노에 차 추나연을 쳐다봤다.
추성화는 송선아의 품에 안긴 채 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됐어요. 나연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제가 실수로 떨어진 거예요. 나연이는 저를 구하려고….”
방금 전의 광경을 자리에 있던 모두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추성화가 그렇게 말할수록 사람들은 그녀를 더더욱 불쌍하게 여기며 그녀를 착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추나연은 악독하고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틀렸어. 일부러 그런 거야.”
추나연은 무표정하게 다가갔다. 온몸에 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는 물귀신처럼 추성화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난 널 죽이려고 한 거야.”
“추나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화가 치밀어 서슬 퍼런 얼굴을 한 송선아는 본능적으로 추성화를 등 뒤로 숨겼다. 행여나 추나연이 자신의 귀한 딸을 다치게 할까 봐 잔뜩 경계했다.
그 행동을 본 추나연의 두 눈에 슬픔이 스치더니 이내 빠르게 사라졌다.
“제가 나빠요? 쟤 엄마가 내 인생을 망치고 내 부모님을 빼앗아 가고 내 오빠들을 앗아가고 내 인생을 빼앗았어요!”
“근데 제가 악독하다고요?”
송선아는 여전히 추성화의 앞을 지키고 섰다.
“성화는 아무 잘못 없어.”
“아무 잘못이 없어요?”
추나연은 코웃음을 쳤다.
“20년이 넘게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오빠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걱정 없이 호화롭게 살았는데 어떻게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럼 저는요?”
그건 추나연이 내내 묻고 싶었던 물음이었다.
그녀가 추씨 가문에 들어선 그날부터 추씨 가문의 모든 사람은 그녀가 혹시라도 추성화를 해치기라도 할까, 그녀에게 추성화와 잘 지내야 한다고, 추성화를 따라 배우라고 했다.
그들은 추성화가 진실을 알게 되면 추씨 가문에서 더는 지내지 못할까 봐 전보다 배로 더 잘해주었다.
심지어는 추성화가 속상해할까 봐 추나연에게 차갑게 대하기도 했다.
“그럼 전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고아원에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했던 전, 무슨 잘못을 한 건데요?”
“살기 위해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탕씩 뛰고 고작 네 시간 겨우 쪽잠 자던 저는, 무슨 잘못을 했냐고요.”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지는 그녀의 질책에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송선아의 두 눈에 고통이 가득 들어찼다.
“엄마도 네가 고생한 거 알아. 엄마도 보상해 주고 싶어. 근데 성화를 미워하면 안 돼. 성화는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엄마는 그저 너랑 성화가 잘 지냈으면 해.”
“하! 쟤랑 잘 지내라고요? 미워하지 말라고요?”
추나연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제가 무슨 성모 마리아라도 돼요? 전 뭐 아무런 욕심도 감정도 없는 줄 아세요?”
“도대체 제 친부모는 맞아요? 제 오빠가 맞기는 해요?”
추나연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왜 피 한 방울 이어지지 않은 사람 편을 들면서도 제 편 한 번은 안 들어주시는 건데요?”
추씨 가문 사람들은 침묵했다.
“왜 나랑 똑같이 물에 빠졌는데, 다들 쟤를 먼저 구할 생각만 해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그 감각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물은 입과 코에 가득 들어찼고 호흡은 할 수가 없었으며 폐는 찢길 듯 아팠다.
그 순간 그녀는 절망과 고통에 가득 휩싸였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면 왜 절 찾아온 건데요?”
“차라리 부모나 오빠가 없으면 없었지. 이렇게… 이렇게 부모님과 오빠들이 날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싶지 않았어요.”
울면서 질책들을 쏟아낸 추나연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밀치고 별장 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궈 바깥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다.
[시스템, 어떻게 된 거야?]
추나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차갑게 물었다.
방금 전 밖에서 보인 초췌하고 실망감 어린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시스템:[주인님, 괜찮으세요? 진짜 우는 거예요?]
[아니, 멀쩡해. 얼른 어떻게 된 건지나 말해? 나 왜 또다시 돌아온 거야?]
방금 전의 말은 그녀의 마음에 걸린 돌 같은 것이었다. 이제 전부 다 뱉어내고 나니 전생의 울분 같은 건 싹 내려가고 없었다.
시스템은 설명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원래도 죽은 게 아니었거든요. 전 그저 주인님의 영혼만 다른 세계로 옮겼을 뿐이에요.]
추나연은 순식간에 깨달았다. 그녀는 죽은 게 아니었고 시스템이 자신의 영혼을 이 세계로 보내 술법을 수련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 술법 수련이 끝나게 되었고 다시 이곳으로 전송이 된 것이다.
그 세계에서 추나연은 이미 백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이 세계는 고작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