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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친구라고?” 고인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모든 아름다운 환상이 산산이 부서졌으니, 불쾌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날 밤 자신을 그렇게 흔들리게 했던 여자가 고작 ‘이런 여자’인가 싶어 내심 역겨움까지 느껴졌다. 그러자 이유 없이 속에서부터 화가 끓어올랐고 눈빛은 날카롭게 변했다. “여기 네 집인 줄 착각하는 거야? 여긴 네가 함부로 개나 소나 데려올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명심해!” 고인성의 싸늘한 기운에 주변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맑았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이 가득해진 것처럼, 분위기가 서서히 얼어붙었다. 황이진은 서둘러 웃으며 수습했다. “미안해요! 대표님이 별장으로 올 줄 몰랐어요. 불편을 드릴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너, 네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거 아니야?” 송유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곁에서 놀던 코코도 그녀가 호응해 주지 않자, 풀이 죽은 채 혼자 공을 물고 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송유리는 황이진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황이진은 서둘러 말했다. “유리야, 오늘은 먼저 돌아가.” “알겠어요...” 별장 주인의 얼굴이 이미 잔뜩 어두워진 상황에서 송유리는 더 머무를 수 없었다. 곧바로 몸을 돌려 정원에 두었던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집사는 급하게 차를 준비해 송유리를 배웅했다. 차 안에 앉은 송유리는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오늘 고인성을 처음 만났을 때, 어쩌면 고인성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섭다는 소문이 사실은 아니었구나 싶었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생각이 짧았다. ‘고인성 대표님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 송유리는 스스로를 탓했다.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고인성이 불같이 화를 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언니가 괜히 그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자책을 느끼던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황이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해요... 언니, 제가 괜히 민폐를 끼쳤네요.] 그러나 메시지를 보낸 후 한참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 원래 조금 활기가 돌던 별장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주변의 도우미들마저 모두 물러난 가운데, 고인성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날 밤은 사고였어.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보상은 충분히 할 거야. 할아버지가 너를 내게 보냈으니, 여기서 살면 돼. 너 하나 먹여 살리는 건 문제도 아니야.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 황이진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인성의 말에 담긴 그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했다. ‘고인성은 너에게 전혀 관심이 없네.’ 하지만 ‘널 먹여 살리겠다’는 말만으로도 황이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넓고 좋은 집에서 살며, 먹고 쓰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라면...’ 그녀에게는 이만큼 좋은 삶도 없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행복이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고인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떠나버렸다. ... 최근 비트 타운의 장사가 유난히 잘되면서 송유리의 일도 덩달아 바빠졌다. 송유리는 얼마 전 황이진에게 보낸 메시지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을 받았다. 황이진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며 마음 쓰지 말라고 했고, 송유리도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두 사람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1번 룸으로 서빙 가줘요.” “네.” 송유리는 대답하며 서둘러 쟁반을 들고 술을 배달하러 나섰다. 또 1번 룸이었다. 송유리는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고 곧이어 고인성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지막으로 별장에서 만났던 고인성의 어두운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고인성 대표님은 분명히 나를 정말 싫어하겠지...’ 1번 룸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두 명의 예쁜 여자가 울상을 지으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거리를 두고 걸어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께 부탁해서 겨우 들어갔는데, 술자리에서 매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왜 갑자기 쫓겨난 거야?” 다른 여자가 그녀를 달랬다. “고인성 대표님이잖아. 여자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질색하는 거로 유명한 분인데, 이럴 수도 있지...” “그건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술집엔 대체 왜 온 거야?” “쉿! 그런 말 하면 안 돼.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틀어막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송유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인성 대표님이 여기 있다고? 혹시라도 나를 보면 또 화를 내시려나...’ 그녀는 얼굴에 쓴 마스크를 만지며 조심스레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비트 타운에서는 직원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고인성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 술만 내려놓고 조용히 사라지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송유리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주문하신 술 나왔습니다.” 룸 안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한 사람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었지만, 고인성은 달랐다. 그는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차가운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이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속세에 물들지 않은 듯 보였다. 그의 친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인성이 형, 이제 한 번 맛도 봤잖아? 뭐 하러 아직도 그렇게 관심 없는 척을 해? 내가 제일 예쁜 애들로 골라서 불렀는데, 이렇게 다 퇴짜 놓을 줄은 몰랐어.” 고인성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네가 평소에 어울렸던 여자들은 다 이런 애들이야?” “왜? 문제 있어?” “취향하고는... 보는 눈이 형편없네.” “푸핫!” 친구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고인성의 차가운 눈빛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알았어. 내 눈이 형편없다 치자. 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뭐야? 내가 찾아줄게.” 고인성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하게 시선을 흘리던 그의 시선이 문득 멈췄다. 송유리는 조심스럽게 쟁반에 담긴 술병들을 하나씩 바 테이블에 올리고 있었다. 짧은 상의 아래 드러난 하얗고 가느다란 허리와,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곧고 긴 다리가 은근히 시선을 끌었다. 비트 타운에는 예쁜 여자가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고인성의 눈에는 그녀만 보였다. 송유리는 술을 다 내놓자마자 도망치듯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고인성의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성이 형, 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혹시 저런 스타일인가?” 고인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유리는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모른 채, 오직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거기, 술 서빙하던 분? 잠깐만요...” 자기를 향한 말임을 깨달은 송유리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고객님, 추가 주문 도와드릴까요?”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울리자, 고인성의 눈빛에 미묘한 빛이 스쳤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야...’ 고인성은 다시 한번 그녀를 찬찬히 바라봤다. 지금까지 너스레를 떨던 그의 오랜 친구, 윤지훈은 그 순간 확신했다. 두 사람은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윤지훈은 십수 년을 함께한 고인성의 성향을 모를 리 없었다. 고인성이 저렇게 여자를 바라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분명 그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증거였다. 윤지훈은 고인성의 눈빛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말을 던졌다. “여기 고 대표님이랑 같이 술 한잔하는 거 어때요?” “죄송합니다. 저는 술을 서빙하는 직원일 뿐이에요.” “대표님이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리예요? 대표님과 술을 마실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기회인데 말이에요. 정말 그런 기회를 놓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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