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강다인은 택시 타고 강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이 김지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강다인이 나타나자마자 분위기가 얼어붙고 말았다.
강다인은 무표정으로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때 강하늘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강다인! 거기 멈춰! 오빠를 보고도 인사 안 해? 이제는 막 나가기로 한거야?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는 보건실 선생님이 네 편을 들어줘서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넌 강씨 가문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강하늘은 말할수록 화가 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지우만 예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얼마나 못된 짓을 저질렀는지부터 생각해 보라고. 지우 아빠가 너의 목숨을 살려줘서 우리가 대신 빚을 갚아주는 거잖아.”
강다인은 들을수록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소파 쪽을 쳐다보았다.
“오빠들, 나 왔어.”
‘이러면 됐겠지?’
강서준이 입을 열었다.
“밥 먹어.”
“오빠들 먼저 먹어. 난 배 안 고파.”
강다인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2층으로 올라갔다.
“형, 왜 저러는 거야? 점점 더 심해지잖아.”
김지우가 입을 열었다.
“오빠, 너무 화내지 마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강씨 가문을 떠나면 언니가 이러지 않을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가도 다인이가 나가야지. 네가 왜 나가.”
강다인은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무시한 채 발걸음을 재촉해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문에 기대어 한참 서있는데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강다인은 눈물을 삼켜보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친형제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강다인은 평소대로 수업받으러 학교에 가기로 했다.
같은 차에 탄 김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인 언니, 아직도 화났어?”
“김지우, 연기하는 거 힘들지도 않아?”
창문에 기대어 눈감고 한잠 자려고 했던 강다인은 김지우랑 말 섞기도 싫었다.
김지우는 눈빛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기사 아저씨가 지켜보고 있어 습관적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는 내가 김지우를 괴롭히는 줄 알고 너무한다고 생각했는지 강서준에게 이르려고 했다.
수업 내용을 많이 놓친 강다인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김지우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여자아이들이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할 순 없었다.
...
수업이 끝나서 집에 돌아갔는데 강별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때 김지우가 애교를 부리면서 다가갔다.
“오빠, 돌아오셨어요?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기분이 안 좋았던 강별은 김지우의 애교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강다인은 이 둘을 힐끔 쳐다보고는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때 강별이 고개 들면서 말했다.
“강다인, 네가 요즘 말을 안 듣는다고 하늘이한테서 듣고도 믿지 않았는데 정말 이제는 오빠를 보고도 인사 안 해?”
강다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돌아섰다.
이런 곳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오빠.”
“이래야지. 아, 이번에 크루를 다시 만들려고 하는데 서준이랑 하늘이가 이미 동의했으니까, 너도 함께해.”
강다인은 저번 생과 똑같이 하는 말에 가방끈을 꽉 쥐었다.
강별을 기쁘게 하려고, 오빠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게임 연습에 매진하면서 수능마저 망쳤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다인, 이미 실력이 증명되었으니까, 이제는 네 자리를 지우한테 양보해. 챔피언의 기쁨을 함께 누려야지. 강다인, 팀장은 나야. 사람을 교체하든 말든 내 마음대로야.”
전생에는 결국 억울하게 교체당하고 말았다.
만약 강다인이 최선을 다해 임하지 않았다면 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교체를 당하다니.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어쩔 수 없이 김지우한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강다인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생에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게 할수 없어!’
강다인은 눈빛이 확고해졌다.
“오빠, 난 수능에 전념하고 싶어. 게임에 정신 팔고 싶지 않아.”
강다인은 강별의 제안을 거절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명령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강별은 상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으니 말이다.
“강다인,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왜 내 요청을 거절하는 건데?”
강별은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고 말았다. 강다인을 크루에 합류시키고 싶었는데 거절할 줄 몰랐다.
그동안 강다인은 그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강다인은 여전히 확고하게 말했다.
“내 마음대로 거절할 수도 있는 거잖아.”
강다인은 표정이 일그러진 강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때 강별이 화난 말투로 말했다.
“강다인, 억지 부리지 말고 잘 생각하고 대답해. 나중에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울면서 나한테 빌지 말고!”
강별은 강하늘을 통해 요 며칠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강다인이 홧김에 자기가 선물해 준 챔피언 트로피를 김지우에게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트로피는 강별이 프로게이머로 거듭난 첫 번째 해에 따낸 트로피라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줄 수가 있지?’
김지우는 강별의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오빠, 화내지 마요. 오빠 크루에 합류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인데 다인 언니도 결국엔 함께할 거예요.”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괜찮았을지 몰라도 이 말에 강별은 더욱 화가 났다.
그저 강다인이 자기 체면을 살려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이때 강별이 강다인을 힘껏 째려보면서 말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지금 바로 대답해. 우리 패밀리 크루에 합류할지, 말지.”
강다인은 대뜸 이 상황이 우스웠다.
‘오빠도 김지우 손에 놀아나는구나.’
김지우가 일부러 관심하는 척하면서 말했다.
“다인 언니, 오빠 화내기 전에 얼른 대답해.”
강다인이 그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김지우, 네가 꿈꿨던 일이라면 너한테 양보해 줄게.”
그러고서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놓친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충해야 했다.
이때 도우미 아줌마가 와서 노크했다.
“아가씨, 저녁 드세요.”
“방으로 가져다주세요.”
“둘째 도련님께서 함께 식사하자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혼자서 밥 먹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강다인은 펜을 꽉 쥐고 말았다. 아직은 강씨 가문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참자는 생각에 1층으로 향했다.
강서준, 강하늘, 강별, 그리고 김지우가 식탁 앞에 앉아있었다.
강씨 가문에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테이블도 대형 테이블이었다.
강다인은 가장 구석에 앉아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이보다도 더 침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곧 김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강별은 강다인을 힐끔 보더니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지우야, 이따 오빠가 직접 게임을 가르쳐줄게. 누구와는 달리 넌 똑똑해서 배우는 것도 빠를 거야.”
김지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오빠, 민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게요.”
강다인은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김지우가 합류하면 패자부활전에도 올라가지 못해 챔피언을 따낼 일도 없었다.
강다인은 화기애애한 이들을 무시하고 고개 숙여 밥만 먹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투정 부리지도 않았다.
강다인은 밥 다 먹고 평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다 먹었어. 천천히들 먹어.”
인사를 안 했다면 또 뭐라고 했을수도 있다.
강서준은 질투하지도 않는 강다인의 차가운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또 물었다.
“다인아, 정말 패밀리 크루에 합류할 마음이 없어? 게임 잘하잖아. 우리 가족이 힘을 합치면 챔피언을 따낼 수도 있어!”
‘강다인,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