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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강다인은 그 말을 듣고 흥미가 생겼다. 두 사람은 몰래 뒤쪽에 숨어 강별과 그의 팀이 보스 몬스터를 잡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형 보스는 쉽게 잡을 수 없으므로 팀원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보스의 체력이 거의 바닥나 성공이 눈앞에 다가오면 대부분 팀원의 체력도 소진 상태가 된다. 보통 이런 유명한 팀의 보스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강다인은 예전에 이 보스의 공략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언제 나서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석훈과 완벽한 호흡을 맞추며 보스의 마지막 순간에 달려들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결국 보스는 강다인과 이석훈에게 빼앗겼다. 곧 세계 채널에 공지가 떴다. [축하합니다. 스위트 레몬님이 무릉도원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강별은 이 결과를 보자마자 헤드셋을 쓰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너희들 대체 뭘 한 거야! 보스를 뺏기다니!” 김지우는 옆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저 두 사람 신규 계정 같던데, 설마 우리를 모른다고요? 감히 우리 보스를 뺐다니!” 강별은 더욱 흥분하며 말했다. “그럼 잡아! 둘 다 죽여버려!” 하지만 곧 강별의 게임 화면이 흑백으로 변했고 이어서 그의 팀원들도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강별은 [스위트 레몬]이라는 닉네임을 보며 이상하리만치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다인의 플레이 방식과 비슷한 것 같았다. 설마 강다인이 일부러 새 계정을 만들어 자기 보스를 빼앗으려고 한 걸까? 아니, 강다인이 그렇게 실력이 좋을 리 없었다. 한편 강다인과 이석훈은 보스를 빼앗아 보스 처치 보상까지 손에 넣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별과 김지우를 골탕 먹인 것이 더 큰 쾌감이었다. 두 사람은 게임을 잠시 더 즐기다 배달 음식이 도착하자 게임을 멈췄다. 이석훈이 말했다. “일단 밥 먹어요.” 강다인은 배달 음식과 함께 도착한 작은 케이크를 보고 놀랐다. 그것은 낮에 김지우가 받은 케이크와 같은 브랜드였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케이크까지 샀어요?” “여자들은 보통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성적도 잘 나왔으니 상으로 준 거예요. 나를 망신 시키지 않은 것도 고맙고.” 강다인은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이석훈은 어색한 듯 무심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배달시키는 김에 그냥 같이 주문한 거예요.” 강다인은 작은 케이크를 들었다. 이건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케이크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케이크를 한 입 먹고 눈을 살짝 내리깐 채 감정을 추스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석훈은 그녀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맛이 별로예요?” ‘이 케이크가 인기 최고라는 말을 들었는데 설마 기대에 못 미친 걸까?’ 강다인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정말 맛있어요. 이런 케이크를 누가 일부러 사준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그녀는 생일을 챙긴 적이 없었다. 오빠들도 그녀가 이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기억하지 못했고 케이크는 늘 그녀 차지가 아니었다. 이석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생일이면 당연히 케이크를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다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부모님이 제 생일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 이후로는 생일을 한 번도 챙긴 적이 없어요.” 강다인의 생일은 곧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그날만큼은 집안 분위기가 항상 무거웠고 그녀는 생일 파티를 요구할 자격조차 없었다. 이석훈은 가슴이 뭔가에 세게 찔린 듯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함께 어딘가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강다인은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들어 말했다. “사실 생일이고 뭐고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챙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그날은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생일을 즐길 자격이 없었다. 이석훈은 마음속에서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의 하얗고 고요한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작은 동물처럼 순진해 보이는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철든 모습은 이석훈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목울대가 살짝 떨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그만 들어가요. 어린애는 늦게까지 밖에 돌아다니면 안 돼요.”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또 여기 놀러 와도 돼요?” 강다인은 그를 바라보며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석훈의 눈빛이 밤하늘처럼 어둡게 물들었다. “그렇게 나를 믿어도 돼요? 내가 다인 학생을 속이면 어쩌려고?” 강다인은 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를 속일 만한 가치가 없잖아요.” 그녀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선생님은 지금 제 유일한 친구예요.” 이석훈은 순간 멈칫했다. “친구라...”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아무나 믿지 마요. 특히 남자라면 더 조심해야 해요.” “알았어요, 그럼 갈게요.” 강다인은 손을 흔들며 가방을 메고 보건실을 나섰다. 이석훈은 그녀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를 바라보며 과거 그 사고 현장에서 산산조각 난 커다란 케이크가 떠올랐다. 그의 머리가 저릿저릿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 사고 이후로 그는 케이크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도련님, 강다인 씨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석훈은 전화를 끊고 석양 아래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강다인이 집에 돌아오자 강서준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강다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오빠.” 강서준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동생은 어딘가 서먹하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강다인의 성적이 크게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강서준은 사실 그녀가 부정행위를 한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성적은 진짜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발전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서준은 강다인의 변화가 정말 크다고 느꼈다. 단순히 가족들에게 반항하거나 심술을 부리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달라진 것이다. 그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예전에는 그를 중심으로 맴돌던 동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강다인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은 확실히 노력의 결과였다. 단순히 가족에게 반항하기 위해 공부한 게 아니었다.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과거를 떠올렸다. 게다가 강별이 학교에서 벌인 일까지 생각하니, 자신이 그녀의 감정을 너무 간과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달라진 걸까? 강서준은 복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늦게 들어오다니, 또 밖에 독서실 갔던 거야?” “응.” 강서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이 외부 독서실보다 환경이 나빠? 밖은 복잡하고 이상한 사람도 많으니까, 앞으로는 밖에서 공부하지 마. 안전하지 않아.” 강다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녀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결정을 내려버리는 강서준이었다. 강서준은 말을 이어갔다. “지우 성적이 이번에 많이 떨어졌잖아. 그래서 내가 가정교사를 붙였어. 너도 같이 듣는 게 어때? 지우가 모르는 게 있으면 네가 도와줄 수도 있고 어차피 같은 반이니까 지우가 학교에 못 나왔을 때 중요한 부분을 대신 정리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강다인은 조롱이 가득한 눈빛으로 강서준을 바라보았다. 결국 김지우를 위해서 그녀더러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거였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싫어.” “다인아, 나도 오늘 강별이 학교에서 잘못한 건 인정해. 그리고 네가 네 실력을 증명한 것도 알아. 하지만 우리 결국 가족 아니야? 지우가 성적이 떨어진 건 팀 배틀 대회 준비 때문이야. 너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니까, 대신 지우 성적을 올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게 맞지 않겠어? 네가 경험도 있고.” 강다인은 이 말이 우스울 뿐이었다. 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 이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변명이나 설명조차 불필요했다. 그 순간 강별이 방에서 뛰쳐나오더니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강다인, 넌 양심도 없어? 지금까지 강씨 가문에서 먹고 자면서 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강다인은 이 모든 상황이 우스울 뿐이었다. 지난 생에서 그녀는 강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밤낮으로 게임 기술을 연마하며 팀을 챔피언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김지우가 눈물 몇 방울 흘리자마자 쉽게 강다인을 팀에서 밀어내고 챔피언 자리를 가로채 갔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강다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강씨 가문에서 나갈게. 앞으로 강씨 가문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단호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단절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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