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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장

나는 주한준과 정지훈의 뒤를 따라 긴장한 채 사무실로 들어갔다. “형수님, 홍차 괜찮아요?” 나는 정장 외투를 벗고 있는 주한준을 흘깃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거대한 대표 사무실 안에는 오직 나와 주한준 두 사람만 남았다. 주한준은 검은색 셔츠 차림으로 테이블 앞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은 서류를 깔끔하게 넘겼고 진지한 얼굴에는 집중 두 글자가 가득 써져 있었다. 나는 없는 취급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날 무시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는 부탁을 하는 태도를 보여야했다. 그리하여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경제 잡지를 들어 인내심 있게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록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주한준이 입을 열었다. “남 팀장은 꽤 여유가 많나보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앞에 있는 서류로 향하고 있었지만 무시한 말투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정확하게는 오늘 밤 두 번 만난 동안 그의 말투는 계속 이렇게 날이 서 있었다. 나도 이제는 딱히 놀랍지도 않아 잡지를 닫은 뒤 온화하게 말했다. “주 대표님, 꼭 해명하고 싶은 게 있어요.” 주한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계속 화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희가 사적으로 임 팀장에게 연락을 한 건 확실히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난처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자는 잠시 멈칫하다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가 변호사를 연락했던 것도 딱히 영한 그룹에게 대항을 하겟다는 뜻이 아니라….” “아니야?” 주한준이 별안간 내 말을 잘랐다. “하지만 내가 들은 소식으로는 남 팀장은 특별히 형사 사건 담당 변호사를 찾았다고 하던데?” 주한준은 ‘일부러’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주한준의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본 나는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왜 날 찾아온 거야?” 주한준은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업신 여기며 말했다. “남 팀장은 이미 엄 교수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찾았잖아?” 엄겨울 이야기가 나오자 별안간 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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