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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장

또 주한준한테 약점을 잡혔다. 똑같이 매화 구경을 했지만 나는 주한준이 주워 온 꽃잎을 구경했고 임지아는 직접 단산에 가서 구경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 말해주다시피 신경 쓰는 거랑 안 쓰는 거는 정말 티가 났다. '내가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졸랐던 단산이잖아.' 과거랑 현재가 서로 겹쳤다. 게다가 임지아가 이렇게 게임 장면에 쓰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가 반대한 장면에 쓰려고 하다니 정말 우스웠다. 아니다, 주한준이 계속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아마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왜 그러는 거지? 내가 일부러 임지아 기획안을 부정했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러는 건가? 그래서 이럴 때 내 상처를 들춰내려고? 마음이 먹먹해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픈 느낌은 없고 실망만 느껴졌다. 기억 속 내가 주한준이 한 행동을 낭만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는 불쾌한 마음을 누르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공과사를 구별 못하고 임 팀장 괴롭힐까 봐 이렇게 직접 오신 거예요?" 주한준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남 팀장님을 당연히 믿죠. 하지만 남 팀장이 이 데이트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면 왜 시도하기 싫어하는 거죠? 혹시 남 팀장 사실은 '신경 쓰이는 거' 아닌가요?" 주한준은 "신경 쓰인다"에 악센트를 주었다. 그리고는 내 감정을 놓칠까 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신경 쓰는 건가?'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임지아의 기획안이 나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주한준이 아끼는 사람이 내가 아니란 걸 각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주한준은 바빴지만 임지아와 같이 매화 구경을 갔고 나는 주워 온 꽃잎만 보았다. 꽃잎에 왜 떨어졌을까? 아마 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주한준이 나에게 제일 좋은 걸 주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어리석었다. "뭐?" 나는 그제야 주한준이 계속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재촉하지 않았다. 임지아 덕분에 주한준의 인내심이 많이 길러진 것 같았다. "주 대표님, 이건 시행착오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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