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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이장훈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빗자루를 보고 싸늘하게 눈빛을 빛냈다. 예령이를 봐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리도 적반하장으로 나올 줄이야!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빗자루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건 이리 주시죠!” 무지막지한 힘에 김현화가 비틀거리더니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하필 개가 똥싼 자리에 얼굴을 박고 넘어졌다. 고개를 들자 얼굴은 똥범벅이 되고 악취가 풍겼다. “이장훈, 이 무례한 자식이! 너 정말 죽고 싶어?” 김현화는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나 다시 이장훈에게 달려들었다. 이장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빗자루를 치켜들었다. 전혀 밀리지 않는 기세에 오히려 김현화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이렇게 이장훈에게 기고만장할 수 있던 이유는 장모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과거 이장훈은 항상 그녀에게 예의 바르고 살갑게 대해주었고 김현화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뀐 이장훈의 태도가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김유신이 엄마를 말렸다. “엄마, 나도 상대가 안 되는데 엄마가 무슨 수로 저놈을 상대해?” 김현화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저놈이 감히 나한테까지 폭력을 휘두르겠어?” 김유신이 말했다. “엄마, 저놈 예전의 이장훈이 아니야! 내 꼴을 보면 모르겠어?” 김현화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이장훈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는 빗자루를 든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모습이었다. 김현화는 이장훈에 감방에서 금방 출소했다는 것을 떠올리자 더욱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런 곳에서 살다 오면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도 잔인하고 흉악하게 변할 수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김현화는 저도 모르게 겁에 질려 뒤로 뒷걸음질쳤다. 이장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전에는 당신이 아무리 예의 없고 선 넘는 행동을 했어도 장모님이라 참은 겁니다. 하지만 김인영이랑 이혼까지 하기로 한 마당에 우린 그냥 남남일 뿐이죠. 계속 나와 싸울 생각입니까?” 말을 마친 그는 빗자루를 높게 치켜들었다. 놀란 김현화는 목을 움츠리며 연신 뒤로 뒷걸음질치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다급히 애원했다. “때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예령이 안 때릴게….”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살며시 눈을 뜨자, 이장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밖으로 나온 이장훈은 예령이를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예령아, 앞으로는 아빠가 지켜줄게. 아무도 너 괴롭히지 못하게.” 예령이는 고개를 들고 말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지켜줄 수 있어?” 이장훈은 아이가 대체 뭘 봤기에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그는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당연하지.” 그제야 아이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역시 TV는 사람을 속이지 않아. 아빠는 히어로야!” 이장훈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3년 떠나 있는 사이, 얼마나 애정에 목말랐으면 이런 말을 할까?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에게 물었다. “딸, 이루고 싶은 소원 있어?” 지금의 그는 뭐든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예령이가 원한다면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었다. 예령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예령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줘. 애들한테 나도 아빠 있다는 거 보여줄 거야.” “어린이집이라….” 너무도 간단한 소원에 이장훈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내일 아빠가 어린이집 데려다줄게. 아니, 앞으로 매일 데려다줄게.” 다음 날. 이장훈은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도착하자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들어가, 예령아.” 아이는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잡으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아빠, 가지 마. 여기 가만히 서 있어. 예령이가 애들한테 아빠 소개해 줄 거야. 그래야 애들이 우리 아빠라는 걸 알지.” 이장훈은 조용히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여덟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구청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여덟 시였다. 지금 가지 않으면 분명 늦을 것 같은데 딸이 이렇게까지 하니 두고 갈 수 없었다. “알았어. 친구들이 아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의사라고 하면 돼.” 의사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고 그는 딸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었다. 구청 입구. 차에서 내린 김인영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장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지만 이장훈의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이장훈이 오지 않자, 김인영은 점점 조바심이 났다. “억지로 사인했다가 후회한 게 분명해!” 그녀는 이혼 서류를 내려다보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 이혼을 계속 거부하면 나도 방법이 있다고!” 그렇게 10분을 더 기다렸지만 이장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차에 올라 산경 마을로 가려던 순간에 택시 한 대가 구청 앞에서 멈추었다. 차 문이 열리고 이장훈이 차에서 내렸다. 김인영은 짜증스럽게 차 키를 조수석에 던지고는 이장훈을 향해 소리쳤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나 이제 한 회사의 대표야. 시간이 곧 돈이라고. 나 지금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렸어!” 이장훈은 어린이집에서 딸아이의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만나고 오느라 좋았던 기분이 김인영을 보자마자 싹 사라졌다. “아침에 일이 좀 있었어.” 그 말을 들은 김인영이 비아냥거렸다. “전과자가 무슨 볼일이 있다고? 나 장영 물산 대표야. 내가 출근을 안 하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당신이 나보다 바빠?” 이장훈은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그래. 당신은 회사밖에 모르지. 예령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난 당신이랑 달라. 애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은 김인영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이장훈, 지금 나 모진 엄마라고 욕하는 거야? 애 어린이집에 데려다줘도 시간은 남아. 지금이 대체 몇 시지? 예령이 핑계 대지 마. 이혼하기 싫어서 일부러 늦게 온 거잖아? 다 큰 성인끼리 이러지 말자고.” 이장훈은 두말없이 구청 대문으로 들어갔다. 당장 이혼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김인영이 그를 불러세웠다. “거기 서! 지금 찔려서 도망가는 거야?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현실을 직시해.” 듣다못한 이장훈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인영, 네가 가진 모든 건 내가 창조한 거야. 잘난 척하지 마! 언젠가는 후회할 거야. 이혼한다며? 빨리 들어가서 수속이나 마무리하자고!” 말을 마친 그는 곧장 로비로 향했다. 이런 배은망덕하고 매정한 여자와는 한시라도 같이 있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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