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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안소희는 문자에 답장한 후 서도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웬 일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저녁에 본가에도 가야하니, 뜻 밖의 일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녀는 문자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강성에 도착하면 나에게 문자를 줘. 내일 한번 만나자" 만약 서도훈이 먼저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녀는 주도권을 잃게 될 것 같았다. 이 일은 아무래도 본인이 먼저 연락해서 얘기하는게 더 나을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쓰레기 아빠가 오면 거절하기도 쉽겠지만, 하필 이 녀석이 오다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나니 이미 6시가 거의 되었다. 왕 기사님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바로 문을 나섰다. 차에 탔을 때 나영재도 차에 타고 있었다. 나영재는 여전히 점심에 입고 있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잔머리들이 이마 사이사이에 흩어져있어, 차가운 그의 얼굴에 좀 더 꾸미지 않은 듯한 아름다운 느낌을 더해줬다. 안소희는 먼저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차는 안정적으로 본가로 향해 달려갔다. 거의 도착할 때 쯤, 오늘 얘기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 나영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좀 있다가 엄마가 너한테 왜 날 안 좋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거야?" "솔직히 얘기해야지." "안소희." "응?" "허가윤에 대해 얘기하면 부모님이랑 할아버지가 우리 이혼하는거 절대 동의하지 않을거야." 나영재의 조각 같은 얼굴에 냉랭한 기운이 역력했고, 검은 눈동자에는 한기가 가득했다. 안소희는 그저 나영재가 어이가 없다고만 생각되었다. "내가 언제 허가윤에 대해 말한다고 했어?" 그 말을 들은 나영재는 멈칫했다. 그의 맘 속에는 한가지 추측이 생겼다. "무슨 뜻이야?"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그냥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 안소희는 아무렇지 않게 한번 더 설명했다. "당신이 너무 지루해서 내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 그녀의 머리 속엔 서도훈에 관한 일로 가득 차 있어, 나영재와 서로 머리 굴리며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나영재는 그녀가 그냥 홧김에 하는 소리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싶었으나, 안소희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는 정말 진지했고 그건 안소희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짓누르며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도련님, 사모님, 저희 도착했어요." 왕 기사님이 차문을 열어주었고, 나영재와 안소희가 차에서 내렸다. 안소희에게 이혼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부모님들 앞에서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귀띔할려는 찰나, 안소희가 이미 그의 팔짱을 꼈고 아주 담담하게 "가자."라고 말했다. 나영재: "......" 왜 이 여자가 예전에는 그냥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 두 사람은 본가로 들어가 마당을 지나 안채로 향했다. 나 씨 가문의 본가는 사합원과 비슷하게 생겨 건축 면적이 아주 넓다. 두 사람이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그냥 소규모 가족 식사여서 그들 둘 외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와 집사들만 있었다.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나 여사는 안소희를 자기 옆에 앉히고 둘이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영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고, 이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방 집사, 음식 들여와." "네, 회장님." 잠시 후 맛과 모양이 모두 일품인 요리들이 식탁에 올랐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나마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나영재의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하시더니 "둘이 결혼한지도 2년이나 되는데, 언제 애기를 가질 생각인가?"라고 물었다. "급하지 않아요." 나영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물었냐?" 할아버니는 마치 나영재에 대해 그닥 탐탁치 않는 눈치였다. "난 소희에게 묻는거야." 나영재: "......" 안소희는 입 안에 있는 음식을 삼킨 후 "급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나영재는 눈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건가? "영재가 너한테 못되게 구는거 아니야?" 나 여사가 안소희를 관심하며 물었다. "만약 영재가 잘해주지 않으면 우리한테 얘기해, 우리가 너 대신 쟤를 혼내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한테 얘기해." 할아버지도 입을 여셨고, 그는 안소희를 진심으로 어여뻐해주셨다. "우리 나씨 가문의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도 서러움을 당해선 안돼." 나영재: "?" 그는 할아버지께 꼭 일깨워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 나씨 가문의 아이는 저에요." "그래? 내 기억으론 네가 소희를 따라 나씨 가문으로 들어온 걸로 아는데." 할아버지는 이 손주에 대해 사랑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소희는 나랑 같이 바둑도 두고, 서예도 같이 하고, 말뚝도 박고 했는데 넌 나랑 같이 뭐 한적 있냐?" "저한테 NA그룹을 잘 관리하라고 한 게 할아버지잖아." “아니야.” "......"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안소희는 공용 젓가락으로 할아버지께 즐겨 드시는 요리를 집어드렸다. "할아버지가 제일 즐겨 드시는 요리에요." "역시 소희가 최고야." 할아버지는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영재는 자신이 불필요하단 느낌이 들었다. 곁눈질로 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소희를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자기도 모르는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안소희가 방금 결혼했을 때에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모님은 비록 소희에게 예의를 지켰으나 좋아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였다. 재벌 가문에서는 아무래도 결혼을 할 땐, 비슷한 세력들끼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으나, 그때 나영재와 안소희는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상황이라 어른들은 불만이 있어도 그닥 티를 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주 만나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점점 안소희를 이뻐하기 시작했고, 항상 전화를 걸어 소희가 시간이 되는지 묻곤 하셨다. 나영재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보니, 차라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그들끼리 연락을 주고 받게 하였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안소희는 어른들과 사이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지 말만 이쁘게 한다고 이토록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한 끼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안소희는 계속 분위기를 띄웠고,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안소희는 맘 속으로 다 알고 있었다. 이 식사가 끝나면 결국엔 해야 할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래도 그런 얘기를 식사자리에서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영재야, 네가 주방에 가서 과일 좀 깎아다가 소희에게 줘." 나 여사가 우아함을 풍기며 나영재에게 분분했다. "네가 직접 깎아야 돼." 나영재는 안소희를 한번 보고는 "알겠어."라고 답했다. 나영재가 자리를 비우자, 할아버지와 나 여사의 모든 관심이 안소희에게 집중됐다. 나영재의 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있었고, 가끔 귀를 기울여 그들의 수다를 옅듣곤 했다. "소희야, 엄마에게 솔직히 말해봐. 너희들 결혼한지도 꽤 되는데 아이가 안 생기는데 무슨 특별한 원인이라도 있는거야?" 나 여사는 그나마 말을 돌려서 물어봤다. 안소희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나 여사가 불쑥 한마디 했다."영재가 몸에 문제라도 있는거 아니야?" "아니요." 안소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녀석을 위해 핑계 댈 필요 없어." 할아버지는 차이나 튜닉 슈트를 입고 있었고,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에는 기운이 넘쳤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가 안 생기는 건 , 분명 그 녀석이 몸이 부실해서 그래." 안소희:"......" 방금 과일을 자르고 들어온 나영재 : "..." 아버님은 이를 보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영재에게 "아들아, 너 문제 있니?"라고 물었다. 나영재는 낯색이 검게 변했고 "아빠야말로 문제 있는거 아니야?"라고 반박했다. "내가 문제 있다면 네가 어디서 왔겠니?" 아버지는 아들에게 노익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나영재: "......" "영재야, 왜 아직 거기 서있어?" 할아버지는 나영재에게 마치 주어온 손자마냥 험하게 말씀했다. "어서 소희에게 과일을 가져다주지 않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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