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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나영재는 안소희와 비슷한 색상의 잠옷을 입고 있었고, 살짝 벌어진 옷깃과 흐트러진 머리까지 더해지니 평소와는 다른 여유로운 멋을 풍겼다. 다가가기조차 힘들었던 싸늘한 분위기도 많이 사그라든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신혼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영재는 멍하니 서 있는 안소희를 보고 그제야 얼굴과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는 걸 발견했다. 이 모습을 본 나영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왜 울어." "내가 왜 울어?" 안소희는 의문스러운 듯 되물었지만, 새벽에 눈을 떠서 흐리멍덩했던지라 일부러 눈물을 감추려 강한 척하며 반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영재는 안소희가 이혼 때문에 슬퍼하는 줄 알고 입을 열었다. "깬 김에 와서 좀 앉아." "아니, 괜찮아." 안소희는 매우 졸렸던지라 물을 마시고 다시 자고 싶었다. "먼저 잘게." 안소희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나영재는 안소희의 팔목을 덥석 잡더니 손에 든 잔을 건네받고 식탁으로 향했다. 안소희는 어리둥절했다. 나영재는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컵을 안소희 앞에 놓더니 나지막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잠이 안 와?" 안소희는 컵에 담긴 물을 조금씩 마시며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내일 이혼하는 것 때문에 그래?" 나영재가 물었다. 안소희는 물을 마시다가 멈칫했다. 저게 무슨 소리일까. "너와 결혼할 때는 정말 평생 함께하고 싶었어." 나영재는 말이 없는 안소희를 바라보며 먼저 얘기를 꺼냈다. 검은 눈동자에는 평소의 차가운 느낌도 덜한 느낌이었다. "근데 가윤이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어." 안소희는 물을 다 마시고 컵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응, 알아." 허가윤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나영재는 안소희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결혼식이 싫다고 하니 혼인 신고만 했고, 너무 많은 관심이 싫다고 하니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주었다. 심지어 신분의 격차로 혹시라도 불편하고 부끄러워할까 봐 작은 일을 해도 입을 닳도록 칭찬해 주었다. 허가윤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안소희는 결혼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둘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소희야." 나영재는 그때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안소희의 이름을 불렀다. 안소희도 더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꿈에서 엄마를 봐서 그런 걸까, 아니면 새벽 감성에 둘의 좋았던 과거가 떠올라서 그런 걸까. 안소희는 예전처럼 나영재의 말에 대답했다. "응?" "미안해." 나영재도 왠지 모르겠으나, 안소희 얼굴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안소희는 나영재의 기분을 고려해 결국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받아줄게." 나영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정 기복이 전혀 없는 안소희의 말을 들으니,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이혼하면 남남이니까," 안소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시 만나도 처음 본 사람처럼 지내자." 돌아가면 다시 회사 경영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안진그룹은 아버지 거지만, 엄마의 심혈도 담겨 있었다. 기업과 기업의 협력은 흔한 알이었다. 특히 NA그룹과 안진그룹은 국내 제일의 대기업이었으니, 안소희는 앞으로 프로젝트 회의나 협력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나영재의 눈빛은 어두웠으나, 그래도 안소희가 걱정되었다. "너도 하나만 약속해." 안소희가 말했다. "얘기해 봐." "앞으로 다른 사람이랑..." 여기까지 말한 나영재는 멈칫하며 아무리 입을 떼려고 해도 재혼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안소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그 사람 품에서 애틋하게 웃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안소희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나영재에게 물었다. "뭐라고?"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결혼 전에 혼전 재산 등록은 꼭 해." 나영재는 안소희가 걱정되어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에게 너 돈 많다는 것도 얘기하지 말고." 나영재에게 안소희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다른 사람에게 십몇억이나 들고 있는 걸 들킨다면 나쁜 심보를 품고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소희는 위험해진다. "걱정하지 마, 나도 알아." 안소희는 진심이었다. 나영재는 점점 더 답답해졌다. 낮에는 안소희와 서도훈의 사이를 따지고 들었으나, 지금은 온화한 태도로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니. 나영재는 자신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는 모두 안소희 얼굴의 눈물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반응을 이혼 전의 마지막 다정함으로 생각했다. "말 다 했으면 난 이제 올라가 잘게." 안소희는 너무 졸려서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영재가 안소희를 불러세웠다. 안소희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영재를 바라보았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물어보려던 그때, 나영재는 손을 내밀고 엄지로 안소희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낮은 목소리라 마음이 아픈 듯 말했다. "울지 마." 안소희는 손을 들어 다른 쪽 얼굴을 만져보았다. 정말 물이 묻어 있었다. 안소희는 멈칫하더니 잠에서 깨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다음, 고개를 들고 나영재를 보며 설명했다. "안 울었어." "애써 강한 척하지 마." 나영재는 어두운 눈빛으로 손을 거두고 안소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진짜 안 울었어." 안소희는 손으로 얼굴을 닦고 컵을 들며 단호하게 설명했다. "그 눈물로 보였던 건 너랑 부딪혔을 때 얼굴에 튄 물방울일 거야." 나영재는 할 말을 잃었다. 안소희는 나영재의 젖은 잠옷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밤이 되면 좀 쌀쌀하더라, 이따가 옷이라도 갈아입고 자." "..." "난 먼저 올라갈게, 물 쏟아서 미안해." "..." 안소희는 컵을 선반에 올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갔다. 나영재는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안소희의 한 마디로 분위기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나영재의 안색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안소희가 우는 걸로 착각하고 그렇게나 위로해 주었다니, 조금 전의 자신이 너무 멍청해 보였다. 안소희가 자신을 보던 눈빛을 생각하니 더욱 짜증 났다. 그때 안소희는 자신을 멍청이라고 생각했겠지. 거실에 멍허니 서 있던 나영재는 한참 후에야 방에 돌아가 소파에 앉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었으며,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영재는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거실에서 기다렸다. 아무도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꺼내지 않았으며, 조용하게 아침을 먹었다. 8시. 두 사람은 서류와 필요한 증명서를 들고 차에 탔다. 성진영은 나영재와 안소희 모두 안색이 어두운 것 같아 백미러를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정말 사모님과 이혼하실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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