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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시선이 마주친 순간. 차가운 분위기와 함께 두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불만이 가득했다. 안소희는 나영재와 말도 섞기 싫어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잠깐만." 나영재는 안소희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안소희는 못 들은 척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나영재는 앞으로 다가가 계단 위에 올라선 채로 안소희를 내려다 보며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하자." "그래." 안소희는 이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소파로 향해 걸어갔고, 나영재는 먼저 앞으로 다가가 리모컨을 치웠다. 안소희는 그 모습을 보고 말없이 자기 컵으로 물을 받아 마시고 소파에 다가가 앉았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서도훈이랑 무슨 사이야." 나영재는 안소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떤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안소희는 떳떳하게 대답했다. "친구." "언제 알게 된 건데." 나영재가 계속 물었다. 안소희는 숨김없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나영재는 졸렬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서도훈의 집안을 봐. 유유상종이라고 이런 집안은 어울리는 사람부터 다르다고. 네가 어떻게 어릴 때부터 서도훈이랑 아는 사이야?" 안소희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도훈한테 헛된 욕심 부리지 마." 나영재는 경고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서도훈,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그냥 친구라고 했잖아,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어." 안소희는 설명했다. "네 헛된 망상을 나한테 대입시키지 마, 이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자 예의야." 나영재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안소희는 나영재의 말을 듣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면 나도 뭐 좀 물어보자. 너랑 허가윤은 어떻게 알게 된 건데?" 나영재는 침묵을 지켰다. "그 여자도 네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으니까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안소희는 나영재의 말투를 따라 하며 비슷한 말을 건넸다. "안소희!" 나영재는 또 화를 냈다. 안소희는 소파에 기댄 채 별다른 감정 기복이 없었다. "가윤이랑 서도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그러니까 가윤이 이름 더럽히지 마." 나영재는 심한 말을 내뱉으며 안소희가 왜 서도훈을 싸고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이혼하고 편하게 살고 싶으면 서도훈을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안소희는 핸드폰을 들고 떠났다. 사랑에 눈이 멀어 지능이 0이 된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 게 잘못이었다. 허가윤, 허가윤, 허가윤.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안소희와 초고속으로 결혼한 걸까. 완전히 쓰레기였다. 나영재는 매우 답답했으나,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는 안소희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영재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소희는 정말 최대한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영재가 있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창밖의 화분을 보던 안소희는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청정 클린 맞죠? 입주 청소 좀 하려고요. 네, 먼지가 좀 있을 거고, 내일 입주할 거예요. 네, 비밀번호 보내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안소희는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냈다. 이 집은 몇 년 전 강성에서 산 복층 주택이었다. 강성은 경치가 좋고 기후도 적절해 휴가철에 놀러 오기 딱 좋은 도시다. 그때는 여유시간이 나면 쉬러 오려고 구매한 집이었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모두 끝냈지만, 아직 한 번도 발을 디디지 않았다. 안소희는 나영재만 보면 짜증이 나서 내일 이혼 도장만 찍으면 물건을 모두 그 집으로 옮기려고 생각했다. 나영재는 안소희의 이런 계획을 전혀 모른 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성 비서에게 안소희의 정체를 찾아보라고 시켰다. 생각해 보니 안소희의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성진영은 온 오후 바삐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찾아봐달라고 부탁했으나, 안소희 주민등록증에 적힌 자료 정도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성진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나영재에게 전화했다. "사장님..." "찾았어?" "찾긴 찾았는데요..." 성진영은 쪽지에 적힌 토막글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자료가 너무 적어서..." 나영재는 이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곧바로 대답했다. "얘기해 봐." "안소희, 성별 여." 성진영은 벌벌 떨며 위에 적힌 글을 읽었다. 나영재는 의문스러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다렸으나 성진영은 말이 없었고, 나영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고..." 성진영은 겁에 질려 수도 없이 안경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없습니다." 응? 뭐라고? 나영재의 컴퓨터 화면에는 서도훈에 관한 자료가 열려 있었고,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없다고?" "오후 내내 찾았는데 이 정도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정보보다... 더 적어요." 성진영은 벌벌 떨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모님에 관한 정보를 찾는 겁니까?" "더 자세하게 찾아봐." "이게 자세하게 찾아본 결과입니다." "정말 자세하게 찾은 거 맞아?!" 나영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후 내내 걸린 결과가 고작 이름과 성별이라고?! 성진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다시 용기 내 입을 열었다. "네, 자세하게 하나하나 찾아본 결과입니다." 나영재는 할 말을 잃었다. "사장님, 어쩌면 사모님은 아주 대단한 해커라서 자기에 관한 정보를 몽땅 숨겨버린 게 아닐까요?" 성진영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떠벌였다. 나영재는 곧바로 그의 말을 받아쳤다. "머리는 장식이야?" "서울, 자고로 서울은 숨은 인재가 가득한 곳입니다. 사모님이 정체를 숨긴 천재 해커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성진영은 이미 안소희를 아주 대단한 인물로 여기고 있었다. 성진영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나영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울?" "왜 그러십니까?" "서울 출신인 건 어떻게 알았어?" "전에 혼인 신고 하러 갈 때 주민등록증을 살짝 봤습니다." 성진영은 비상한 기억력으로 주민등록증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주소와 발급지가 모두 서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영재는 멈칫했다. 성진영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설마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뚝. 나영재는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금고에서 안소희와의 혼인신고서 사본을 꺼냈다. 위에 적힌 주소를 본 나영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정말 서울이었다... 설마 안소희와 서도훈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걸까? 나영재는 곧바로 이런 생각을 부정했으나, 또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안소희의 가족과 만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영재는 곧바로 핸드폰을 책상에 버리고 30분 정도 생각한 후 몸을 일으켜 안소희의 방에 가서 노크했다. 문을 연 안소희는 막 샤워를 마쳐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었다. 물방울이 머리카락 끝에서 하얗고 가느다란 목에 뚝뚝 떨어졌고, 짙은 색의 잠옷을 입어 피부가 더욱 뽀얗게 보였다. 선명한 쇄골에 물방울이 묻어 있는 그 모습은 정말 청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나영재는 거칠어진 호흡을 느끼고 눈을 돌렸으나, 곧바로 안소희의 맑은 눈매와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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