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서도훈은 동의하고 싶었다.
비록 안소희는 이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일을 당했으니 친구로서 체면이라도 세워주고 싶었다.
안소희의 아버지가 서도훈을 보낸 것도 나영재에게 함부로 소희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결정해." 안소희는 서도훈과 연청원이 사업상의 거래가 있는 줄로 오해하고 배려하며 대답했다. "난 상관없어."
"그러면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서도훈은 동의했다.
연청원은 더욱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인사말을 하고 곧바로 나갔다.
안소희는 문이 닫힌 후 평소와 똑같이 이성적인 태도로 서도훈과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해, 난 신경 쓰지 말고."
"그래." 서도훈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영재와 만났을 때 예의를 한껏 차려도 되지 않으니 말이다.
연청원은 두 사람에게 걸어가며 룸 밖의 나영재를 향해 비꼬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밥은 같이 안 먹겠대, 둘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은데."
나영재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고,
주머니에 넣은 손도 멈칫했다.
"그런데 밥 다 먹고 얼굴은 한번 보자고 하네." 연청원은 의미심장한 말투로 얘기하며 말을 이어갔다. "서도훈이 안소희 말을 얼마나 잘 듣던지, 쯧쯧쯧. 모르는 사람들은 커플인 줄 알겠더라."
"눈이 안 좋으면 안과나 가봐." 나영재는 연청원의 말을 받아치고 먼저 룸으로 돌아갔다. "책도 좀 읽고."
연청원은 의아했다.
그러고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임천우의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 "저게 뭔 소리야?"
"말을 잘 듣는 다는 단어사용이 잘못되었어." 임천우는 온화한 말투로 웃으며 대답했다. "커플로 보는 건 눈이 삐었다는 소리고."
그 말을 들은 연청원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나영재!
나영재!
그래!
이따 두고 보자.
30분 후.
연청원은 나영재와 임천우를 먼저 올려보내고 내려가 안소희와 서도훈을 데려왔다. 그러고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놀고 먹고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위층의 클럽으로 올라갔다.
사실 레스토랑의 사장이 바로 연청원이었다.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친구 나영재, 임천우입니다." 연청원은 줄곧 안소희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영재를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분은 서울에서 오신 서도훈 씨와 친구분이야."
서도훈은 간단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나영재와 안소희는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줄곧 시선을 맞추었다!
"영재야, 뭐 하는 거야." 연청원은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결혼도 한 사람이 도훈 씨 친구분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안 되지."
나영재는 연청원이 일부러 일을 벌이려는 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서도훈 씨, 그 친구분이라는 사람이 저랑 혼인 신고한 여자인데...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간단한 한마디에
분위기는 순간 싸해졌다.
안소희와 서도훈이 무슨 사이라고 해도 이제는 다 까발려진 셈이었다.
"우리 소희가 결혼한 건 알고 있었죠." 서도훈은 소파에 앉아 금빛 테두리의 안경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남편이 나영재 씨일 줄은 몰랐습니다."
안소희는 "우리 소희"라는 말에 닭살이 돋아 고개를 돌려 서도훈을 보며 "이게 무슨 짓이야"라는 눈빛을 보냈다.
곧바로 서도훈은 "네 체면 세워주는 거야"라는 눈치를 보냈다.
안소희는 할 말을 잃었다.
나영재도 "우리 소희"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 소희", 할아버지도 "우리 소희", 그런데 이 서도훈이라는 사람도 "우리 소희"라는 호칭을 썼다.
나영재도 그렇게 불러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형수님이셨구나!" 연청원은 갑자기 입을 열더니 몸을 일으켜 자리를 비워줬다. "제가 몰라뵀네요, 여기에 앉으셔야죠."
"괜찮습니다."
"됐어."
나영재와 안소희는 동시에 거절했다.
한 사람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하게 거절했다면, 한 사람은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그래?" 연청원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 "둘이 싸웠어?"
나영재는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봤지만,
연청원은 못 본 척했다.
"얘기하고 있어." 안소희는 나영재와 한마디도 섞기 싫었다. "난 화장실 다녀올게."
"그래, 다녀와." 서도훈이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 대화에 나영재는 마음 한 구석이 콕콕 찌르는 듯 아파왔다.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니 남편인 자신이 오히려 남인 것 같았다.
연청원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도훈 씨와 소희 씨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서도훈은 멈칫했다.
대대로 친분이 있는 가문이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안소희가 절대 신분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순간, 서도훈은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서도훈의 반응을 본 나영재는 떳떳하지 못한 사이니까 대답을 못하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룸의 분위기는 한층 더 싸늘해졌다.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이만 넘어가죠." 연청원은 분위기를 띄우며 술을 시킨 후 잔에 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마십시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안소희가 돌아왔다.
안소희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하지만 안소희는 더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서도훈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후, 남은 세 사람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다. "저는 이만 가볼테니 이야기들 나누세요."
"뭘 그렇게 급히 가요." 연청원이 안소희를 불러세웠다. "이따 영재랑 같이 가요."
"아니에요."
"조금만 더 있다 가." 서도훈도 입을 열었다.
안소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룸의 분위기는 순간 싸늘해졌다. 나영재는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술잔을 꽉 잡았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소희 말을 들어보니 둘이 이혼한다면서요?" 서도훈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하필이면 아픈 곳을 콕 집어 나영재에게 물었다. "사실입니까?"
"왜요, 서도훈 씨가 넘겨받으려고 그럽니까?" 나영재는 버럭 화를 내며 험한 말을 내뱉었다.
말을 내뱉은 순간, 나영재는 바로 후회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연청원도 서도훈이 이렇게 심한 말까지 내뱉을 줄은 몰랐다.
정말 원해서 이혼하는 거라면 이렇게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나영재." 안소희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나 너무 심한 말을 들은 지라 반박하기 시작했다. "넌 머리가 장식이야? 생각은 하고 말을 내뱉는 거야?"
나영재의 손은 멈칫했으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 듣기 싫으면 처신 잘하고 똑바로 행동하든가."
"미친 거 아냐." 안소희는 나영재와 말씨름하기 싫었다.
그러고는 씩씩거리며 테이블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두 번째 잔을 들려던 그때, 나영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막으려고 했으나 또 다른 손이 먼저 안소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서도훈이었다.
서도훈은 걱정과 배려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만 마셔, 몸 상해."
안소희는 얌전히 술잔을 테이블에 놓았지만, 기분은 엉망진창이었다. 나영재가 이렇게 험한 말까지 내뱉을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