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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장

나는 그런 하지훈이 웃기기만 했다. 고청하 곁을 지키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다니 참 신기한 광경이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침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실만 도착한다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오늘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다. 오늘 발생한 모든 일은 그저 악몽을 꾼 거로 생각하고 꿈나라로 떠나면 되는 일이다. ‘맞아, 자고 깨나면 모두 지나간 일이 될 거야.’ 내 생각에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온몸은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힘들다. 눈꺼풀도 뜨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나아갔다. “잠깐 멈춰봐.” 드디어 방문 앞에 도착했는데 뒤에서 하지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따라온 것 같다. 화가 담겨있는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또 어딜 가서 지금까지 놀다 온 거야? 내가 사 오라는 약은 어떻게 됐는데?”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밀려오는 아픔과 나 자신에 대한 불쌍함 때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봐, 내가 이렇게 늦게 왔는데 걱정은커녕 놀다 온 게 아니냐 의심하고 있잖아.’ 하지훈은 내가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해준 적이 없었다. 오늘 밤 내가 곽태준 손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더라도 하지훈은 모를 것이다.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눈물이 말라버린 것처럼 쓰라렸다. 나는 말라 터진 입술을 열고 약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말할 힘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 났고 당장 잠을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서 있는 남자는 날 놓아줄 생각이 없나 보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따져 물었다. “묻잖아! 어디 갔냐고? 약을 사 오기 싫다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약을 사 오겠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밖에서 놀다 와? 그러고도 나한테 할 말 없어?” 하지훈의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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