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하석훈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손을 살짝 조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향해 말했다.
“미안해.”
하석훈은 억지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네가 형을 좋아하게 된 것도 나에 대한 배신도 아니야.”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말을 할 때 늘 부드러웠던 눈빛에 보일 듯 말 듯 한 음험하고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하석훈은 그렇게 예의 바르고 온화한 기질을 지녔고, 쌀쌀하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눈빛을 가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잘못 본 게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조유라는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영아, 너 어떻게 하지훈을 좋아하게 되었어? 그는 애초에 비열한 수단으로 너랑 결혼했잖아. 우리가 하지훈을 얼마나 미워했는데 너 어떻게...”
“내가 하지훈과 결혼한 3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게다가 감정적인 일이 어떻게 정확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왜 또 이혼 한 거야?”
하석훈이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꽉 잡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유라는 화를 내며 말했다.
“개자식이 사업이 잘 나가니 아영이에게 보복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럼 지금 무슨 신분으로 형과 함께 있는 거야?”
하석훈은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질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지금 애인의 신분으로 하지훈 곁을 따라다니며 그가 주는 수치심을 그대로 느낀다고 말하면 유라의 성격으로는 당장 칼을 들고 하지훈의 회사에 뛰어들 것 같았다.
원래 이 자리에 온 것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분명히 말하려고 온 것인데 지금 보니 전혀 확실히 말할 수 없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석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아저씨 아줌마 뵈러 갔었어.”
“어? 우리 엄마, 아빠 만나러 갔었어?”
나는 조금 놀랐다.
하석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아직 우리 형이 너와 이혼한 것을 모르고 있었어. 너희 집 빚은 우리 형이 갚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영아, 형은 너를 원하지 않는데 네가 이렇게 명분도 이유도 없이 형의 곁을 따라가는 것이 형에게 이 빚을 갚기 위해서야?”
“난...”
사실 그 ‘애인 계약'을 떠나서 간단히 설명하면 확실히 이런 일이다.
조유라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참에 그 자식이 복수를 단단히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일부러 경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지훈 씨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아닌 게 이상하지!”
조유라는 여전히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그때 그런 비열한 수단을 썼을까?”
사실 그때 그 동창회에서 하지훈이 나한테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말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조유라는 씩씩거리며 또 한마디 했다.
“원래 동창회에 초대도 안 했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도 몰랐어. 하지훈이 아니었다면 넌 지금쯤 이미 석훈이랑 함께 있으며 얼마나 행복했을지도 몰라. 전부 그 자식 탓이야. 그 자식이 널 망쳤어. 화가 나네.”
나는 웃으며 유라의 등을 다독였다.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하지훈은 정말 네 말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아.”
“어쨌든 그 사람 탓이야. 우리 아영이가 이렇게 좋은데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 그런 아영이랑 결혼했으면 고마워해야지 지금 사업이 잘된다고 널 버리다니. 화가 나 죽겠네!”
조유라는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고 나는 계속 그녀에게 화를 풀어 줄 수밖에 없었다.
유라는 성격이 불같은데 매번 우리 집에 갈 때마다 오빠는 유라와 싸우곤 했다.
“아영아, 그 자식 좋아하지 마. 그렇게 나쁘고 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네가 만약 마음을 준다면 앞으로 고통받는 것은 너 자신일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유라에게 이렇게 약속했지만 하지훈의 여신을 떠올리면 내 마음은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아팠으니 앞으로의 일은 정말 말하기 어려웠다.
하석훈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영아, 형에게 빚진 돈이 얼마야? 내가 갚아 줄게.”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서 갑자기 싸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갚아줘? 그럼 무슨 자격으로 갚아 주겠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