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훈은 바로 이 술집에 있는데 그는 진작에 나를 보았다.
그리고 방금 하지훈에게 한 거짓말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변해 지금 내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뻣뻣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훈은 나에게 한참 동안 키스한 후에야 놓아주고는 손끝으로 빨갛게 부어오른 나의 입술을 매만졌다.
까만 눈동자로 나를 보며 웃고 있지만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
“술집에서 자는 거야?”
내가 술집에 있는 걸 알면서도 방금 나한테 전화해서 묻는 바람에 내가 계속 거짓말을 한 걸 생각하니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나를 봤으면서 왜 일부러 전화해서 떠본 거야?”
하지훈은 눈빛이 한껏 어두워진 채 웃는 듯 말 듯 했다.
“네가 나에게 진실을 말할 줄 알았어. 심지어 너에게 기회까지 주었지만 너는 끝까지 나를 속였어.”
그의 손가락은 나의 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힘을 줘 목을 부러뜨릴 것 같았다.
내 마음이 또 긴장해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나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네가 아무리 나를 속여도 내가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아?”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그의 마음속의 여신도 아닌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그의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아, 내가 널 속였어. 날 어떻게 처벌할 거야?”
“글쎄?”
그의 웃음기가 더 짙어졌는데 그윽한 두 눈에는 굶주린 늑대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것처럼 독기가 가득했다.
나는 어젯밤 그의 광기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다리가 나른해졌다.
그는 나의 허리를 잡고 조금 쉰 목소리로 물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다리가 후들거려?”
지금 잘못을 인정해도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처롭게 말했다.
“미안해. 일부러 속이려던 게 아니야. 네가 화낼까 봐 거짓말했어.”
“그래...”
하지훈은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내 허리를 더듬으며 가볍게 웃었다.
“네 말은 나를 속이면 내가 화나지 않는다는 거야?”
“아니야.”
나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피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넌 내가 클럽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잖아. 하지만 오늘 유라가 귀국해서 잠깐 모인 거야. 그래서...”
“그럼 하석훈은? 걔도 오늘 귀국했어. 그러니 너 걔를 급하게 만나러 온 거야? 아니면 이미 손까지 잡았나?”
“아니야!”
나는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
그는 틀림없이 하석훈이 나를 끌어당기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하석훈이 날 일방적으로 끌고 간 건데 어떻게 그의 눈에 띄어 우리가 손을 잡은 거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엄연히 다른 뜻인데 말이다.
나는 계속 변명하려 했지만 하지훈은 나를 끌고 옆문으로 나갔다. 그는 나를 차에 밀어 넣은 후에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
나는 애써 몸을 다잡고 그를 힐끗 보았다.
무뚝뚝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온몸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그는 이전의 하지훈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
어쩌면 그의 애인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는 변했고 내가 전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려 고개를 숙이고 보니 하석훈이 걸어온 전화였다.
나는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하지훈을 다시 보고는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하지훈이 입꼬리를 씩 올렸는데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억울해!’
예전 같았으면 직접 욕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가는 길에 하석훈이 나에게 전화를 세 통 걸었지만 나는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하지훈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왜 안 받아?”
‘네가 화낼까 봐 그런 거잖아!’
나는 속으로 악을 쓰면서도 얼굴엔 비굴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왜 받아. 그 사람이랑 할 말이 없어.”
“그래?”
하지훈은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차에서 앉고 내려 집으로 향했다.
집안일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어서 난감해진 나는 발버둥 치며 말했다.
“내려 줘. 스스로 걸어갈 수 있어.”
“너는 너무 느리게 가고 나는...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스읍!’
그의 마지막 그 음침한 목소리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애매함과 암시를 띠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얼굴부터 목덜미까지 다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