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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변선희는 서정희가 8살 때 떠났다. 그날은 서제평의 생일로 그녀는 한껏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했지만 결국 맞이하게 된 건 부모님의 이혼 서류였다. 서정희는 계단에서 굴러가며 그녀를 쫓아갔다. 신발이 벗겨진 것도 알아채지 못한 서정희는 변선희의 다리를 안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가지 마!” 세련된 여자는 그녀의 앳된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엄마, 나 이번 시험에서 학년 1등 했어. 아직 내 시험지 못 봤잖아, 부모님 사인이 필요해.” “엄마, 나 버리지 마. 나 말 잘 들을게. 앞으로는 놀이동원도 안 가고 화나게 하지도 않을게. 말 잘 들을게, 제발….” 서정희는 황급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그녀를 붙잡았지만 변선희는 그저 아버지와의 혼인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제는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 서정희는 낯선 아저씨가 그녀를 도와 트렁크를 차에 실어주더니 손을 잡고 떠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맨발로 몇백 미터를 쫓아가다 바닥에 세게 넘어져 무릎과 발바닥이 깨지고 긁혔다. 서정희는 그저 멍하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의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 크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불륜 사실이 들킨 엄마가 들킨 김에 이혼을 제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선희는 그녀를 포함해 위자료나 재산도 받지 않은 채 짐만 챙겨 나갔다. 십몇 년간 연락도 하지 않아 서정희는 그녀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었다. 한때는 평생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 했다. 운명이란 참으로 우습게도 결국에는 자신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목이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듯, 그녀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변선희도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어, 자신이 먼저 일어나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다 앉혔다. “날 미워하는 거 알아. 그땐 네가 너무 어렸어. 많은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서 난 너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 변선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우리 딸 다 컸네. 아가, 이번에는 여기서 오래 지낼 생각이야. 서씨 집안에 일이 생긴 것도 알아. 근데 괜찮아, 엄마가 잘 챙겨줄게.” 이 순간 서정희는 소위 말하는 원한은 엄마라는 말 한마디에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그래, 온 김에 밥 먹자. 그동안 네 아저씨 엄마한테 아주 잘해줬어. 그이에게 딸이 있는데 너보다 두 살이 많아. 조금 있다가 약혼 상대랑 같이 식사하러 오는데 내가 소개해 줄게.” 서정희는 그녀의 새 가장에 녹아들 생각이 없어 얼른 그녀를 말렸다. “엄마, 난 아버지 일 때문에 온 거야. 엄마도 알겠지만 우리 집안 파산했어. 아버지가 지금 심장병이 발작했는데 도무지 수술비가 없어.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나중에 꼭 갚을게.” 변선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정희 씨 진짜 돈이 아주 궁한가 보네. 돈 달라고 우리 집까지 다 오고.” 그 목소리를 듣자 서정희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문 앞에 나타난 사람을 쳐다봤다. 백지연과 염정훈이었다. 운명은 또다시 그녀에게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던졌다. 자신의 엄마가 백지연의 계모가 되다니! 자기 남편도 엄마도 전부 백지연의 가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엄마를 찾아와 돈을 빌리는 걸 백지연과 염정훈에게 딱 들키기까지 했다 염정훈의 눈에 서정희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지켜만 볼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우아아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를 깨트렸다. 서정희는 그제야 고용인이 밀고 있는 쌍둥이 유모차를 발견했다. 아기가 울자마자 염정훈은 곧바로 그중 한 아이를 안아 익숙하게 달랬다. 서정희의 눈에 그 온화한 네 가족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만약 그녀의 아이도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쯤 저 정도 컸을 것이다. 그녀는 왜 이곳에 왔을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기둥에 박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칼에 베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아이는 오늘 아무리 달래도 조금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용인이 얼른 분유를 타왔지만 아이는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 염정훈은 인내심 있게 달랬다. “아가, 착하지. 뚝.” 크고 늘씬한 남자의 품에 자그마한 아이가 안겨 있는 모습은 유난히 온화해 보였다. 그의 다정하고 인내심 있는 모습을 보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서정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염정훈의 앞으로 다가간 뒤 아이를 빼앗았다. 이상하게도 염정훈은 그녀를 막지 않았고, 더 이상한 것은 서정희에게 안기자마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더니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막 1살이 다 되어가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목구비의 아이는 핑크빛의 입꼬리를 올리며 까르륵 웃었다. 입으로는 옹알거리는 말을 내뱉었다. “아마~” 희고 포동포동한 손가락은 그녀 모자의 동그란 털실을 잡아당기려 했다. 배시시 웃는 모습은 염정훈을 빼다 박은 수준이었다. 서정희는 심장이 칼에 찔린 듯했다. 그녀의 마지막 버팀도 그 칼에 찔려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는 한때 순진하게 염정훈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신혼이었던 그해 그는 정말로 그녀에게 아주 아주 잘해줬다. 깊은 밤이 되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귓가에 작게 속삭이기도 했다. “희야, 우리 아이 가질까?” 그가 원하는 것을 서정희가 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직 졸업하기도 전이었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임신했다. 지금 이 순간에야 그녀는 자신과 달콤했던 시간에도 매번 해외에 출장을 갈 때면 다른 여자와도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가 뒤집히는 것 같아 서정희는 아이를 그에게 던지듯 준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먹은 것이 별로 없어 토해낸 것은 전부 핏덩어리들이었다. 가득가득한 붉은 피가 그녀의 두 눈을 시리게 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좋아, 아주 좋아. 두 사람의 혼인은 처음부터 하나의 우스갯거리였다! 이해가 안 되던 부분이 설명이 되니 모든 것이 전부 들어맞았다. 왜 동시에 물에 빠졌을 때 염정훈이 사력을 구한 사람이 백지연이었는지, 왜 동시에 조산했는데 백지연의 곁을 지켰는지 말이다. 다 그녀 뱃속의 아이가 염정훈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정희야, 괜찮아?” 서정희는 처참한 꼴을 가다듬은 뒤 맑은 물로 세수하고는 휘청거리며 나갔다. 변선희는 그들 사이의 문제를 모르고 있어 다정하게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 “정희야, 어디 아픈 거니?” “그냥 저 두 사람을 보니 역겨워서 그래. 토하고 나니까 좀 낫네.” “정희야, 너 지연이랑 아는 사이니? 지연이는 계속 해외에만 있었는데. 혹시 무슨 오해라도 있는 거야? 이분은 염…” 서정희는 차갑게 변선희의 말을 잘랐다. “알지. 염진 그룹의 대표 염정훈이잖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 염 대표는 능력이 출중해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셨지.” “그럼 대단하시지. 아직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에 급급하잖아. 보통 사람은 이 정도 박력은 없지.” 그 말에 변선희는 의아해졌다. “정희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염 대표는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이혼을 해?” 서정희는 비웃음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결혼을 안 했으면, 난 뭔데? 염정훈 씨, 우리 엄마한테 얘기해 봐요. 내가 당신 무슨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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