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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서정희는 무덤 앞에서 반나절을 중얼대다 떠났다. 그녀는 슬픔에 겨워할 새가 없었다. 얻은 사진으로부터 계속 추적을 이어 나가야 했다. 아버지와 접촉할 수 있는 여성은 대부분 회사에 있었다. 회사의 직원부터 조사를 시작하려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아버지가 옛날에 후원한 적 있는 산골 아이 오인범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조급해 보였다. “아가씨, 저 막 귀국했는데 서 선생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고 계세요.” “하아, 서 선생님같이 좋으신 분에게 하늘은 왜 이렇게 매정하신 걸까요? 당시에 만약 선생님이 우리를 산에서 나올 수 있게 후원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 같은 삶을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서정희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서제평이 당시 빈곤한 지역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후원해 주고 있었을 때, 염화진이 깊은 산골로 납치된 거라면, 그렇게 아버지와 만나지 않았을까? “인범 오빠, 저희 아버지가 당시에 후원했던 그 학생들을 기억하세요?” “그동안은 제가 선생님 대신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서 대부분은 알고 있어요. 다만 요 몇 년 동안은 해외에 나가느라 연락이 끊겼죠. 도움이 필요한 거면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시키는 건 뭐든 다 도와드릴게요.” 서정희는 한 줄기의 빛이라도 만든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한테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후원했던 사람이 맞는지 봐주실 수 있어요.” “네, 아가씨.>” 오인범은 서정희가 사진을 보내고 30분쯤 지났을 때 그녀에게 자료를 건넸다. 사진 위의 명랑하고 똑똑해 보이는 소녀는 확실히 묘비 위의 여자애와 많이 닮아있었다. 특히 그 눈동자는 염정훈을 똑 닮았다. 그 여자는 강선화로 가난한 산속에서 걸어 나온 아이였다. 서제평은 12년 전부터 그녀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이 뛰어났고 고등학생일 때에는 국내외 유명한 학교에서 그녀에게 수시 자격을 건넸지만 그녀는 국내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맞다는 것이었다. 서정희는 얼른 오인범과 약속을 잡았다. 커피숍. 오인범은 제때에 현장에 도착했다. 서정희는 10년 전에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는 아직 숫기를 채 벗지 못한 남학생으로 지금처럼 상장 회사 CEO답게 정장을 차려입고 엘리트 기운을 잔뜩 풍기고 있지는 않았다. 비록 서씨 집안이 파산했지만 그는 여전히 예의를 차려 그녀를 불렀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가씨.” “저도 막 도착했어요. 인범 오빠, 저 바로 본론부터 물어볼게요. 강선화와 아직도 연락하세요?” “예전에는 했어요. 출국하고 난 뒤에는 국내의 친구들과 연락이 줄어서 따지고보면 2년 정도 연락을 못 했어요.>” “근황에 대해 알고 있어요?” “저도 요 며칠 전에 외국을 한 데다 이제 막 친구에게서 아가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은 거 아니겠어요. 전 강선화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어요. 기껏해봤자 예전에 선생님을 도와 그들에게 연락을 해준 게 다예요.” 오인범은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아가씨가 부탁하셨으니 오기 전에 강선화와 업계 내 친구에게 알아봤는데 불행하게도 이미 사망했대요. 하아, 참 아쉽게 됐어요. 성적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는데 죽지만 않았다면 분명 더 좋은 미래가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죽은 거예요?” “구체적인 사인은 잘 모르겠어요. 듣기로는 바다에서 건져진 거래요.” 서정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건에는 몇 개의 의구점이 있었다. 염화진이 납치가 되었을 땐 거의6살이 다 되는 나이로 아마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후원한 거라면 왜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걸까? 이 도시에 왔으면서 왜 염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까?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아버지와는 또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아버지는 그분에게 잘해주셨나요?” 서정희가 떠보듯 물었다. “강성화는 불쌍한 아이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돌아가셨고 홀로 이 도시까지 공부해 온 거라 선생님은 늘 잘 챙겨주셨어요. 듣기로는 성격이 조금 괴팍해 같은 숙소 룸메이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길래 선생님이 공부 편하게 하라고 특별히 집도 구해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오인범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아가씨, 왜 이렇게 강선화에 대해 물으세요?” “그 분을 대신해 사인을 찾아내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예요.” 서정희는 원래 염정훈과 이혼한 뒤 20억을 가지고 자신의 뒤처리를 다 끝낸 뒤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바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집안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염정훈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스스로 찾을 생각이었고, 언젠가는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오인범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아가씨, 이건 제 친구예요. 유명한 사립 탐정인데 궁금한 게 있다면 도움을 요청해 보세요.”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요. 저도 나름 강선화와 아는 사이라 저도 그녀가 억울하게 죽기를 바라지 않아요. 최근에는 계속 국내에 있을 예정이니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전 이제 회의가 있어 먼저 일어나볼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서정희는 그가 말한 사립 탐정에게 연락을 해 자료를 전부 보낸 뒤 다시 기운을 냈다. 벼원에 돌아오자 주치의 박 선생이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서정희는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어 불안해하며 물었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 상태는 어떤 가요? 언제쯤 깨어나실 수 있죠?” “아가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아버님의 수술은 비록 성공적이었지만 전에 교통 사고로 머리를 다친 데다 합병증까지 발병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평생 깨어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서정희의 심장이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일회용 컵을 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 그녀이 표정을 보자 박 의사도 마음이 흔들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너무 속상해 하지는 마세요. 제가 말한 건 이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만약 이번달 말에 아버님이 깨어나시면 큰 문제는 없어요.” 고개를 든 서정희는 눈 앞이 뿌얘져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나지 못하면 식물인간이 되는 거고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전 서정희 씨가 최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리 생각을 하길 바라는 거예요. 박 선생은 그녀가 돈 버느라 고생하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식물인간에게 돈을 많이 쓸 필요는 없었다. 서정희는 양소능로 테이블을 짚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결과가 어떻든 전 절대로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전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서정희는 휘청거리며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는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아버지가 평생 깨어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정희는 절대로 쉽게 죽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급하게 종양내과로 들어갔다. 임성결의 진료가 막 끝나자 서정희는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선배, 저 도와줘요.” 임성결은 한껏 흐트러진 그녀를 쳐다봤다. 서정희는 자신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다가 머릿속에한 글자 한 줄기의 말이 떠오른 듯 말했다. “선배, 항암 치료도 좋고 수술도 좋아요. 저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요.” 임성결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가 살고자하는 희망을 얻게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의사로서 그는 몹시 기뻤다. “그래, 지금 당장 첫 번째 항암치료 준비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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