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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지수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정운, 나를 그만 귀찮게 하면 안 돼? 애초에 내가 네 동의를 거치지 않고 너랑 결혼한 것은 내 잘못이 맞지만, 나도 네 다리를 치료해 주었잖아? 이 삼 년 동안 나는 네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 이제 나도 너를 떠나 내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 그게 잘못이야?” 허정운의 동공이 움츠러들더니 잠시 후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가 말했지.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내가 이미 알아냈어. 네가 그 며칠 동안 시승훈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걸. 너는 도대체 어디 갔었어? 이 100억 원은 또 어떻게 손에 넣게 된 거고? 내가 계속 조사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나랑 같이 저택으로 돌아가자!" 지수현은 저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더니 망설이는 눈빛을 했다. 그녀가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스스로 차에 올랐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줄곧 말이 없었다. 지수현은 허정운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매우 짜증스러운 상태였다. ‘내가 이혼해 주겠다는데 당장 이혼수속을 하러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니야?’ ‘지금 이렇게 질척대니 서로가 귀찮잖아?’ 저택으로 돌아온 지수현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계단입구에 도착했을 때, 허정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모레가 네 할아버지 생신인데, 내가 얼마 전에 마침 골동품 꽃병을 한 쌍 낙찰받았어. 그 골동품 꽃병을 생신 선물로 드리는 게 어때?" 지수현은 고개를 돌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은 내게 물어볼 필요 없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허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씨 가문 어르신은 네 할아버지야. 너는...." "그게 뭐?" 지수현은 눈빛에 비웃음이 서렸다. "그저 혈연관계로 엮여있을 뿐이야." ‘지씨 가문 사람들이 나를 가족으로 대한 적이 없으니, 나도 구박받으면서 지시 가문의 비위를 맞춰줄 생각이 없어.’ “어쨌든 그 분의 생일날에 우리도 함께 참가하자.” "알았어." 지수현은 이 세 글자를 차갑게 내뱉고는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허정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어둡게 빛냈다. 방 안으로 돌아온 지수현이 배달을 시키려던 순간, 신설리에게서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수현아, 내가 오늘 네게 말해준다는 걸 깜빡했어. 허정운이 너를 만나고 싶어 했어." 지수현이 놀란 눈빛을 하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MY를 인수하는 일 때문이야?” "응. 한샘 그룹에서 한 달 전부터 MY를 인수하려고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와 이야기했었는데, 내가 줄곧 확답하지 않았어. 아마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너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제시한 금액이 확실히 괜찮아.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늙은 것들이 지금쯤 이미 MY를 팔아 넘기고 돈을 세고 있을 거야.” 지수현이 대답하지 않자 신설리가 계속 말했다. "만약 네가 허정운이랑 만나고 싶지 않다면 내가 거절할게.” 지수현은 잠깐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시간과 장소를 내게 보내줘. 내가 이미 MY로 돌아왔으니 언젠간 그랑 만나게 돼 있어.” "알았어. 그럼 내가 한샘 그룹에 연락해서 시간을 잡을게." "응." 전화를 끊은 지수현이 또다시 배달앱을 보려던 순간, 문 쪽에서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허정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가 와서 저녁을 준비해뒀어. 나는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 나가야 하니 이따가 내려와서 밥 먹어." 지수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차의 엔진소리가 들려 창가로 다가가보니 마침 허정운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오 분 뒤, 지수현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인 것을 본 지수현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베란다에서 잠시 책을 읽던 지수현이 잠잘 준비를 하려던 순간, 문득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힐끗 내려다본 그녀는 허정운이 돌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조금 비틀거리면서 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보아 술을 마신 것이 분명했다. 대리운전기사는 주차를 마친 뒤 가버렸다. 허정운이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지켜보던 지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더니 책을 닫고는 침실로 돌아가 잠을 잤다. 그러나 옆방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에 지수현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 문 앞으로 다가가 짜증스럽게 문을 두드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좀 조용히 해.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추자 지수현이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뒤쪽에서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녀가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던 순간,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큰 손에 붙잡혀 그대로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아..." 지수현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허정운의 손에 이끌려 문에 기대게 되었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귓가에 뿜어지자 그녀가 저도 모르게 바르르 떨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짙은 술냄새로 보아 잔뜩 취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몸에 바싹 붙어 있는 그의 몸도 더없이 뜨거웠다. 그녀는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그를 밀어냈으나 밀리지 않자 문득 화가 났다. "허정운, 날 놔줘!"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몸도 녹일 듯 매우 뜨거웠다. 뜨거운 두 손이 그녀의 몸을 마구 어루만졌다. ‘만약 계속 이렇게 놔둔다면, 분명 사고를 치게 될 거야!’ 지수현이 허정운의 손을 붙잡고는 "탁"하고 침실의 불을 켰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허정운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자, 지수현은 노기를 가득한 얼굴이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는 분명 지연정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허정운은 한번도 두 사람을 헷갈리지 않았다. 지연정은 언제나 연약한 모습이라 그녀를 보면 저도 모르게 보호본능이 들었다. 그러나 지수현은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연약한 모습일 보이지 않았다. 지연정처럼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눈빛에 그는 어떻게 해야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을지 몰라 저도 모르게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수현은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날 놔줘! 내가 다른 사람을 불러줄게!" 허정운은 문득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지수현! 너는 내 아내야!" ‘이 여자가 지금 내게 다른 여자를 찾아다 준다고 한 거야?’ ‘이 여자는 정말 마음도 없어?’ 허정운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린 지수현은 입술을 앙다물더니 차갑게 말했다. "곧 아니게 될 거야!" 허정운은 차갑게 비웃으며 정욕에 물든 두 눈동자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여자가 이혼을 언급한 뒤로, 나는 줄곧 이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하며, 매사에 이 여자에게 타협했어. 그런데 이 여자는 조금도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시각에도 이혼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 허정운이 고개를 숙여 지수현의 입술을 꼭 깨물더니 지수현이 입을 열기 전에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이혼하고 싶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지수현이 번쩍 고개를 들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허정운은 마음속의 분노를 꼭 억누른 채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전제 조건은 네가 오늘 밤 나랑 함께하는 거야!” 허정운이 말을 마치자 지수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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